똥멍청이 만렙은 아님

내일은 또 다르겠지만...

by 배지영



2018년에서 2019년이 된 지 한 달도 채 안 됐다. 그런데 생물학적 나이는 한꺼번에 네다섯 살쯤 먹어버린 것 같다. 출근할 때 핸드폰이나 노트북 마우스를 두고 가는 건 일상이다. “그래, 알았어”라고 친구 길림과 통화를 끝내고는 바로‘내 전화기 어디 있지?’라고 고민에 빠진 날도 있다.



1월 14일 월요일 오후에는 군산시립도서관에서 강연요청이 들어왔다. 강연 파일을 미리 보내는 게 절차다. 담당 선생님은 퇴근 전에 받아보고 싶다고 이메일 주소를 알려줬다. 바로 보냈다. 그런데 말입니다. “메일 안 왔어요”라는 문자가 오후 6시 넘어서 왔다. 알파벳 여섯 글자, 숫자 세 글자를 제대로 입력 못 한 나는 다른 사람한테 메일을 보낸 거였다.



1월 19일 토요일 오후에 우리문고 작가 강연회 진행하러 차를 타고 갔다가 집으로 잘 돌아왔다. 일요일에 보니까 자동차 스마트 키가 없다. 분명히 주차장에서 잠금 버튼 누르고 올라왔다. 온 집안을 뒤져봐도 없다. 이러다가는 한길문고에서 집도 못 찾아올 것 같다니까 꽃차남이 퇴근 시간에 맞춰서 데리러 온단다. 듬직하다. 나는 그 말랑말랑한 어깨에 더 기대고 싶었다.



“근데 예스트서점이랑 우리문고 작가 강연회 진행은 어떻게 하지?”

“그거는 엄마가 정신 차리고 해야지. 나는 아직 초등학교 3학년이잖아.”



1월 21일 월요일 오전. 후배 강성훈한테 여수시청에서 하는 무슨 심사(들으면서 까먹었음)를 맡아달라는 전화가 왔다. 군산에서 여수 가는 길에는 터널이 너무너무 많다. 운전하기 싫은 곳이다. 기차 타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여행 삼아 강동지랑 꽃차남이랑 가서 한밤 자고 와야겠다고 결심하고는 강동지한테 제안했다.



“우리, SKT 타고 여수 가면 되겠지?”

“뭐어? (빵 터짐) SRT 겠지.”



1월 23일 수요일. 쉬는 날이라서 놀고 있다. 제규가 갑자기 운전면허 적성검사 한다고 자기 여권 사진을 달라고 했다. “걱정 마!” 10초 만에 내 가슴은 뛰었다. 기분 나쁘게. 지난달에 내 방을 빼서 제규한테 주는 김에 짐 정리를 했다. 식구들의 각종 증명사진은 따로 챙겼다. 그다음을 모르겠다. 귀신부터 의심했다. 나 몰래 삭제 키를 눌러버린 거겠지.



제규는 “아빠! 빨리 와봐요”라고 전화로 도움을 요청했다. 우리 식구 중에서 가장 청소와 정리에 집착하는 강동지가 와서는 물건을 분류해놓은 수납장들을 싹 뒤져봤다. 없다. 내 옷장까지 디테일하게 꺼내봤다. 없다. 베란다까지 싹 훑어봐도 없다. 없다. 없다. 나는 진짜 두 다리를 뻗고 대성통곡이라도 하고 싶어졌다.



강제규와 강성옥, 둘 다 나를 포기한 분위기. 사진 찾는 행위가 의미 없다고 판단한 듯한 강동지는 점심을 차리러 부엌으로 갔다. 제규는 제 방 침대에 누워서는 스마트폰을 했다. 나도 나를 포기하고 제규 옆으로 가서 누웠다.



“엄마, 증명사진 찍으면 눈썹에 한 피어싱 포샵으로 지워주겠죠? 근데 (사진 찍으러 가는 거) 너무 귀찮다.”



즈그 엄마 들으라고 한 소리겠지. 벌떡 일어나서 생각해봤다. 반백 살도 안 된 내가 식구들 증명사진을 버렸을 리 없다. 원래 사진을 보관했던 내 옷장 문을 열었다. 눈에서 광선이 나올 만큼 강렬하게 들여다봤다. 만화책(혼자만 보려고 숨겨둠)과 내 책(몇 권 보관 중)들 사이에서 증명사진이 보이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비통 그 자체. 나는 털썩 주저앉았다. 내 눈높이에는 디올 자도르 향수 하나와 그거와 똑같은 상자 하나가 더 보였다. 나는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다. 작은 상자 속에는 내 도장과 제규 도장, 아이들의 목걸이와 반지가 들어있는 케이스, 선물 받은 바티칸 묵주, 그리고 수십 장의 증명사진이 있었다.



“찾았다! 내가 해냈어! 진짜로 찾았어!”



나는 증명사진이 올림픽 금메달이라도 되는 것처럼 치켜들고 포효했다. 강동지와 제규한테 달려가서 이 쾌거를 자랑했다. 감격이 가시지 않아서 밥 먹으면서도 계속 “해냈어. 내가 아무리 그래도 똥멍청이 만렙은 안 찍은 거야”라고 으스댔다. 그러나 우리 집 남성 동지들의 호응은 뜨겁지 않았다. 얼마 못 가서 나는 또 무언가를 잃어버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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