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훈

거문도 백도 향일암 여수밤바다보다 성훈

by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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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에 갔다. 한강의 책 <여수의 사랑>도 읽었고, 거문도 백도도 가봤고, 향일암 앞에서 갓김치도 사봤고, 뜨겁게 달궈진 만성리 해변에서 캔맥주 마시고 꾸벅꾸벅 졸았던 적도 있다. 그래도 내게 여수는 후배 강성훈이 사는 도시다.


“누나! 여수 한번 와야쓰겄네.”


지난달에 성훈이 전화를 걸어서는 다짜고짜 ‘오더’를 내렸다.


“알았다이. 근데 왜?”


여수시 행복교육지원센터에서 글쓰기 교육 프로그램을 3년째 운영한다. 거기에서 일할 강사를 뽑는데 심사위원으로 와달라는 거였다.


2월 13일. 여수엑스포역까지 차표를 끊었는데 성훈은 여천역에서 내리라고 했다. 시키는 대로 했더니 기다리고 있었다. 점심은 성훈이 사줬다. 성훈은 여수의 날씨까지 지배하는지, 우리가 식당 옆의 공원을 걸을 때는 볕도 봄처럼 따스했다. 성훈과 나는 모르는 사람을 붙잡고 사진 한 장 찍어달라고 했다. 둘이 찍는 사진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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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끝나고 나니까 성훈이 또 배웅하러 나왔다. “너 바쁘니까 가야~”라고 해도 성훈은 오동도와 엑스포, 바다가 보이는 여수 진산 공원으로 차를 몰았다. 산책하고 커피 마시면서 20년도 더 전의 얘기를 생생하게 했다. 헉! 우리 완전 옛날 사람이구나.


성훈은 카프카를 닮은 국문학과 남학생. 대학신문사에서 학생 기자로 글을 썼다. 그러고도 어떻게 학교 공부를 잘했는지 4년 내내 기숙사에 살았더랬다.


성훈과 보낸 시간은 한 가지만 또렷하게 기억난다. 오다가다 학생회관 근처에서 만난 여름밤이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어울려 다닐 일도 별로 없던 우리는 왜 벤치에 나란히 앉게 됐을까? 왕모기에 뜯기면서도 왜 그렇게 할 말이 많았을까?


그 밤은 별똥별이 끊임없이 떨어졌다. 이야기하다가 “우와!” 하면서 입을 벌리고 하늘을 쳐다봤는데 새벽이 되어버렸다. 그때 주고받은 이야기는 생각 안 나는데 모기 물린다고 다리를 떨면서 빌던 소원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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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졸업한 성훈은 여수로 내려갔다. 성훈은 가끔씩 “잘 지낸가?”라는 안부 전화를 걸어왔다. 나는 전화로만 성훈이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언니(성훈은 언니와 누나라는 호칭을 혼용한다)! 이거 갖고 가. 나이 들면 양손 무겁게 하고 다니는 거여.”


여수 엑스포역에서 내려주며 성훈은 무거워 보이는 것들을 내게 떠넘겼다. 여수 갓김치와 성훈이 만든다는 방풍 초콜릿이었다. 기차 떠나기 9분 전, “뭘 이런 걸 다 주고 난리냐?” 같은 말은 안 했다. 성숙한 아주머니라서 울지도 않았다.


참, 성훈은 나한테 옛날 그대로라고 했다. 근데 살은 좀 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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