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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의 사랑

by 배지영

나는 의심한다.

나이 들면 새벽에 ‘저절로’ 눈 떠진다는 선배들의 말을.


토요일에는 격주로 당진시립도서관 ‘1인 1책 쓰기’ 수업 간다. 오전 6시 30분에 포도시 일어난다. 당진 안 가는 7월의 토요일에는 이제 여수시 행복교육지원센터로. 자동차로는 약 2시간 40분 걸린다. 왕복 6시간 운전을 하라면 할 수 있지만, 터널 무섭다. 많고도 길다. 고로 기차를 타야 하고, 오전 5시 30분에는 일어나야 한다.


나는 눈치챘다.

나이 들면 새벽에 ‘저절로’ 눈 떠진다는 선배들의 허세를.


7월 5일 토요일 오전 5시 20분. 강성옥 씨가 깨웠다. “아니이. 알람 울리려면 10분이나 더 남았는데 왜? 밥 안 먹는다고 몇 번을 말했는데!” 징징거린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게 차려준 음식을 싹 먹고 빛의 속도로 씻고 머리를 말렸다. 군산에서는 여수행 기차가 없으니까 익산역으로 갔다.


“안녕하세요.” 전주역에서 우리 강썬님처럼 멋지게 차려입은 남학생이 옆자리에 앉으면서 귀한 인사를 건넸다. 나는 교양 있는 중년의 태도를 안다. 아름답고 멋진 젊은이들에게 함부로 대화를 시도하면 안 된다. “어디까지 가세요?”는 넣어두자. “안녕하세요.” 하고서 얼른 책을 꺼냈다. 잘했어, 나 자신.ㅋㅋㅋㅋㅋ

여수시 행복교육지원센터 글쓰기 강사 양성 과정.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으로 이야기하다가 3* 살에 강썬님 낳았다는 정보 노출. 현재 고1이라는 것까지 취합한 선생님들은 몹시 매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미리 연습한 사람들처럼 말했다.


“그 나이로 안 보이세요. (웃음) 진짜 훨씬 젊어 보이세요.”


이런 선의의 노력, 좋아한다. 감사하다. 그래서 점심 도시락 먹고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15권, <소년의 레시피> 15권에 사인하고, 오후 1시에 시작할 수업을 15분 당겨서 했다. 자기만의 이야기를 가진 선생님들이 숙제로 낸 글을 첨삭 수업했다. 빵빵 웃어주는 선생님들 덕분에 4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나는 책 세 권 펴내고 나서 전업작가 되었다. 그전에는 20여 년간 글쓰기 선생으로 일했다. 여수시 행복교육지원센터 선생님들은 학생들과 글 한 줄이라도 더 써 보고 싶어 하는 분들. 가방 싸고 있는데도 다가와서 질문하는 선생님들에게 유쾌함을 잃지 않았다. 다만, 2주 뒤에 또 온다는 것을 강조했다. 선생님들은 내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 것 같았다. 광주전남의 딸답게 말했다.


“아따, 수업 시간에 세 번인가 말씀드렸잖애요. 강성훈 씨가 기다린당게요.

성훈(33년 전에는 카프카 꼭 닮았음)은 학교 후배. 떡볶이를 같이 먹은 적도 없고, 언제 군대 갔는지도 모르는데, 어느 밤에 우연히 만나 학교 벤치에서 밤새 쏟아지는 별똥별을 같이 본 적 있다. 졸업하고 고향으로 내려간 성훈이는 늘 먼저 전화했다. 내가 여수로 일하러 가면, 절대 택시 타지 않게, 역으로 마중 나오고, 배웅까지 해줬다.


“어딘가?”


그날 아침, 여수엑스포역 도착하기 전에 성훈이는 물었다. 나는 일부러 기차 시간을 알려 주지 않았다.


“택시 타고 갈 거야. 5시에 끝나니까 그때 보자.”

“금방 도착하네. 누나, 관광안내소 앞에서 기다리소.”


성훈은 나한테 누나(전화할 때)라고 하고, 선배(카톡할 때)라고 하고, 언니(만날 때)라고도 한다. 여수시 행복교육지원센터까지 태워다줬던 성훈이를 7시간 뒤에 또 만났다.

“언니, 뭐 먹을랑가? 먹고 싶은 거 있는가?”


우리는 오랜만에 만났다. 차 타고 바다를 보러 가는 길에 잡담하는 것도, 마주 앉아 밥을 먹는 것도 어색하지 않다. 서른 중반에 결혼해서 아이 둘의 아빠가 된 성훈은 아내보다는 움직이기 쉬운 직업. 방학 때는 애들 점심 챙기러 집에 가곤 한다. 그래서 언젠가 너무 더운 날에 밥하지 말고 치킨 시켜 먹으라고 모바일 쿠폰을 보냈다. 보냈겠지?ㅋㅋㅋㅋㅋ


성훈의 근사한 점은 밥상 사진 다 찍을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 성훈의 거시기한 점은 밥 한 공기 추가해서 한 숟가락만 먹으라며 절반을 주는 것.


성훈의 근사한 점은 이야기가 깃든 20층짜리 카페에 데려가는 것, 성훈의 거시기한 점은 유리 위에 서서 까마득한 아래를 내려다보라고 하는 것.


성훈의 근사한 점은 늘 환대해 준다는 것. 성훈의 거시기한 점은 헤어질 때 꼭 여수 특산품(갓김치, 방품김, 방풍 초콜릿 등등)을 챙겨주는 것. ‘여수의 사랑’을 못 잊게 하는 것.


#여수시_행복교육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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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글쓰고싶다

#이런글은나도쓸수있겠네

#나도꾸준히쓰는사람이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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