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차단 해제

by 배지영

1년 11개월 만에 아빠를 만났다.


아빠는 여전히 멋진 구두를 신고 신상 샤쓰를 입고 주름살 걱정을 한다.

그러나 이제 신용카드를 쓰지 않고 체크 카드를 쓴다. 딸들한테 커피도 사주고요.ㅋㅋㅋ


동네 공원 화장실 두 곳을 호텔 화장실처럼 청소하는 엄마는 요양보호사 도전 중. A4 용지에 책 내용을 그대로 베껴 쓰는 게 엄마 조금자 씨의 공부법. 지금까지 한 묶음(500매) 넘게 썼다고 한다. 식탁 위에는 엄마의 안경과 책과 A4 용지와 연필과 지우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엄마는 실습하러 간 노치원에서 만난 친구 이야기를 해줬다.


우리가 시골 살 때 가장 친했던 분들이 복남 아주머니 한수 아저씨 부부였다. 맛있는 거 했는데, 이웃집과 골고루 나눠 먹지 못할 때는, 복남 아주머니네 집에만 드리려고 집 뒷산으로 넘어갔다. 그 집에는 도포 입는 꼬장꼬장한 할아버지가 계셔서 마당에서부터 깨금발로 걸었던 기억이 난다.


다른 집과 다르게 우리 집은 엄마만 일했다. 들일은 해 지면 더 못한다.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 한수 아저씨와 친척 아저씨는 달 밝은 밤에 우리 집 일을 해줬다. 나는 그때마다 엄마를 따라서 논에 갔고 볏단에 기대 잠들었다가 깨곤 했다. 어른들은 중요한 일일수록 소곤소곤 말했다. 광주에서 큰일이 일어난 얘기도 한밤중에 들었던 거 같다.


우리 집은 면소재지로, 다시 원자력 발전소가 있는 동네로 이사했다. 마당과 화장실도 다른 사람들과 같이 쓰는 집에서 살았다. 어느 해 가을에는 추수 마친 한수 아저씨가 원자력에서 날일을 하려고 우리 집에서 주무신 적도 있다. 또 어느 해에는 복남이 아주머니가 전주 큰딸네 집에 있다고 해서 나도 엄마를 따라가서 잔 적 있다.


“어디서 봤을까요이. 내가 아는 사람 같은디...”


복남이 아주머니는 엄마를 알아보지를 못했다.


“나여, 지숙이 엄마랑게.”


엄마의 말은 복남이 아주머니에게 닿지 않았다. 여름 오기 전이었고, 아빠랑 둘이 영광읍내 K2 매장에서 사이좋게 샤쓰를 몇 장씩 사 입은(나는 이런 허영을 좋아해요) 엄마는 복남 아주머니한테도 신상 샤쓰를 선물했단다. 치매를 앓는 아주머니가 그게 누가 준 건지 모른다 해도.

아빠는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자의 아들. 1948년생, 할아버지 얼굴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 품에서 자랐다. 스물두 살에 조금자 씨와 결혼해서 네 아이를 낳고 기르는 동안 ‘어른’으로 살지 않았다. 이해하다가 미워하다가 안쓰러워하다가 나는 오십 살이 되었다. 아빠가 도대체 아빠 같지 않고, 내 삶의 짐처럼 여겨져서 달아났다.


비 오는 일요일 낮, 갑자기 영광 집에 갔다. 막상 얼굴 보니까 우리는 아무 일 없던 사이 같았다. 군산에서 사 간 떡갈비를 맛있게 먹은 아빠한테 옷이랑 신발 사러 가자고 했다. 올블랙으로 차려입은 아빠는 신발장에 가득 들어있는 구두를 보여주었다. 우리 아빠가 쇼핑을 사양할 줄 아는 ‘어른’이 될 줄이야. ㅋㅋㅋㅋㅋㅋ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여수의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