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담

by 배지영


강썬님은 독감을 좀 무서워한다. 중학교 1학년 때인가. 열이 40도 넘어서 구급차 타고 응급실에 실려 간 적 있다. 독감 걸리면 걷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고 게임도 할 수 없다는 걸 깨우친 강썬님은 해마다 가을에는 알아서 독감 예방주사 맞으러 간다.


겨울 넘기고 맞는 새 학기. 강썬님은 이제 봄마다 독감을 앓는다. 올해도 마찬가지. 열이 또 40도 넘어버린다. 한 방에 16만 원쯤 하는 주사 맞고도 열은 오르락내리락. 스마트폰도 못하고 먹지도 않고 잠만 자더니만. 어젯밤에 햄버거 주문해서 완식. 오늘 저녁에는 느닷없이 토마토 스파게티 먹고 싶다 한다.


“강썬아, 그럼 피자랑 같이 시킬까?”

“피자는 안 먹고 싶은데. 집에서 만든 토마토 스파게티 먹고 싶어.”

“아빠 지금 못 오는데?”

“엄마가 해줘.”


2009년 봄 이 세상에 온 강썬님이 어머니한테 처음으로 요구한 음식 토마토 스파게티. 유튜브에 검색하니까 세상 쉬운 요리란다. 짧은 영상을 열 번쯤 보고 나니 자신감이 생긴다. 요리 좀 하는 배지현 자매님과 강제규님한테 실시간으로 상황을 보고하고 식재료를 사러 마트에 간다. 어쩌면 나는 서양요리에 강한 사람일지도 몰라.ㅋㅋㅋㅋ

요리 수첩에다가 쇼츠에 나온 재료와 조리 순서를 써본다(내 글씨로 써야 안심). 식재료를 썰고(시간이 좀 걸림), 팬에 올리브오일을 두르고 마늘부터 볶는다. 유튜버가 하라는 대로 척척(?) 따라 한다. 스파게티 면도 타이머 설정하고 삶는다. 이윽고 레스토랑에서 날법한 냄새가 퍼진다. 토마토 스파게티를 접시에 담아 사진 찍고 바로 강썬님한테 바친다.

I did it.

내가 해냈다고요!!!

나는 자매님과 강제규님과 귀요미 친구들에게 이 감격의 순간을 전송한다.


그러나 토마토 스파게티는 거의 줄어들지 않는다. 물어보는 말에도 대꾸를 잘 안 하는 강썬님은 중요한 질문에 답이라도 하듯 또박또박 말한다.


“배불러.”


스스로의 요리 실력에 감탄 중인 나는 현실을 자각하지 못한다. 독감 완쾌된 거 아니라서 입맛이 돌아오지 않은 거라고, 한 입만 더 먹어보라고 무례하게 요구한다. 강썬님은 소파에 눕는다. 스마트폰을 한다. 그제야 나는 알아챈다. 맛이 없었구나.


“강썬아, 미안.”

“엄마, 소스는 진짜 맛있었는데, 면이 좀 불은 것 같아.”

소스 사온 거 절반 남았어. 다시 해볼까?”

오늘부터 먹지도 않고서 배가 부를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강썬님은 피식 웃는다.


처음부터 배달시키라고 했던 강성옥 씨는 ‘자기 주방’으로 간다. 퇴근한 그를 기다리는 건 웍에 한가득 남은 토마토 스파게티. 목소리가 쩌렁쩌렁한 편인 그는 낮게 말한다.


“왜 갑자기 요리를 한다고 그래? 낭비야, 낭비.”


나는 절약가. 커다란 글라스락에 토마토 스파게티를 담는다. 처음 만든 음식을 완식하는 건 당연지사. 누가 뭐라 해도 나는, 토마토 스파게티 할 줄 아는 사람이니까.

참, 우리 동네 매화 만개함.


#씨름왕의요리수련기

#토마토스파게티

#재료비_2582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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