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암동 철길마을
"지그들 맘 내킬 때 오제. 하루에 한 번 이상은 와. (기차가) 오긴 온 게 기다려 봐."
오래 전, 철길마을에 사는 아주머니가 말했다. 철로 앞으로 난 빨랫줄에는 아기 기저귀가 널려있었다. 커다랗고 빨간 ‘다라이’에서는 상추가 자랐다. 정갈하게 엮은 시래기는 집마다 바람벽에 걸려 있었다. 돗자리에는 무말랭이와 고추가 널려 있었다. 댓돌 위에는 가지런하게 벗어놓은 신발이 있었다. 철길마을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철로 옆에는 LPG 가스통이 있고, 장독대가 있었다. 집들은 철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었다. 관심을 기울여서 보면, 양쪽 집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한쪽은 살림집, 건너편은 창고나 물일 하는 곳으로 쓰이고 있었다. 창고라고 부르는 곳에서는 개를 키웠다고 한다. 울도 담도 없는 철길마을에는 개 짖는 소리가 흔했다.
기차는 1944년부터 다녔다. 2.5km짜리 철로의 이름은 ‘북선제지선’. 마지막 이름은 ‘페이퍼코리아선’이었다. 군산역에서 제지 공장으로 실려 간 종이원목은 신문지가 되어 군산역으로 되돌아 나왔다. 하루에 두 번씩 다녔지만 운행 시간은 정확하지 않았다.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이 많았는지, ‘철로 위를 함부로 건너면 벌금 물린다’는 안내문도 있었다.
“기차 지날 때는 지진 나는 것 같애. 방 안에서 커피를 마실라고 잡은 손이 막 떨리제. 창문 열고 고개를 내밀믄 안 돼. 기차하고 부닥칠 위험이 있으니까.”
철길마을 아주머니가 해준 말대로 기차는 발 딛고 선 바닥을 흔들면서 왔다. 기차 앞머리에는 안전모를 쓴 아저씨 두 명이 깃발을 흔들면서 “비켜요”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들은 기차에서 뛰어내려 철길에 나와 있는 나물 소쿠리 등을 치웠다. 기차는 살림집과 거의 맞붙어서 천천히 지났다.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고 짖던 개들도 제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어떤 사람들은 기차가 오기를 기다려서 사진을 찍었다. 철길마을은 인터넷에서부터 유명해졌다. ‘한번쯤 가보고 싶은 군산 경암동 철길마을’로 오르내렸다. 그러던 2008년 7월, 무려 64년 동안 ‘지그들 맘 내킬 때’ 다녔던 기차는 멈추었다. 더 이상 기차가 다니지 않는 철길마을은 가끔씩 드라마나 영화에 나왔다.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대포 카메라를 든 사진 동호인들이 왔다. 커플 옷을 입은 젊은 연인들도 왔다. “엊그제 같은데 벌써 30년이 지났어”라고 말하는 중년들이 왔다. 젊은 부부들이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 여행자들은 웃으면서 사진을 찍고, 철길을 천천히 걸었다. 원래부터 살던 사람들은 하나둘씩 철길마을을 떠났다. 살림집이 있던 자리에는 특색을 가진 가게들이 들어섰다.
청년들은 철길마을 곳곳에 노점을 차려서 수공예품을 판다. 예술가들은 공연을 한다. 이제 철길마을에는 옛 모습이 거의 없다. 살림집과 달라붙을 것 같아서 조심스럽게 지나던 기차는 영원히 볼 수 없다. 그런데 철길마을에 오는 사람들은 “나 어렸을 때 있잖아”로 운을 뗀다. 사라진 기차가 두고 간 마성의 매력 덕분에, 저마다의 추억을 소환하고 있다.
첫 번째와 마지막 사진은 군산시청, 다섯 번째 사진은 진정석 작가가 제공해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