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오래된 빵집 이성당
군산 시민들은 이성당 앞에 늘어선 긴 줄을 ‘구경’한다. 눈보라가 몰아치고, 뙤약볕이 내리쬐는 날에도 빵집 앞에 줄 서 있는 외지 사람들. 단팥빵이 뭐라고, 저렇게 지극정성을 쏟을까. 행동파에 속하는 사람들은 이성당 건너편으로 가서 ‘긴 줄’ 사진을 찍는다. SNS에 올린다. “이해 못 하겠어”라는 댓글이 몇 개 달리고 나면, ‘추억 셔틀’이 시작된다.
“이성당에서 미팅 했던 거 생각난다. 걔는 지금 뭐할까. ㅋㅋ”
“큰누나가 결혼식 하기 전날 나만 이성당 데려가서 빵 사 줬는데.”
“버스비로 이성당 감자빵 사 먹고 걸어가면서 후회 함. 집까지 1시간 반 걸림.”
군산에서 나고 자랐다면, 누구나 이성당에 대한 추억 하나쯤은 있다. 1945년부터 있었다는 제과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 이성당. 빵집의 역사는 좀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일제 강점기 시절, 조선 사람보다 일본인이 더 많이 살던 도시 군산. 히로세 야스타로라는 일본인이 과자점 ‘이즈모야’를 열었다. 1910년이었다.
그때 과자점은 아무나 드나들 수 없었다. 돈 많은 사람들만 갈 수 있었다. 실컷 차려입은 일본인들만이 게다를 신고 와서 사먹었다. 히로세의 큰아들은 도쿄에 건너가서 제과 기술을 배웠다. 돌아와서는 단팥빵을 만들어 팔았다. 대성황인 가게, 둘째 아들은 분점을 냈다. 1945년 8월, 히로세 일가를 덮친 날벼락! 일본은 패망했다.
“李盛堂(이성당). 이씨가 하는 집은 번성한다.”
남원 사람 이석우는 적산가옥이 된 이즈모야 제과점을 사들여 이성당이라는 이름을 달았다.
새벽 4시부터 밤 11시까지 빵과 과자를 만들어 팔던 시절도 있었다. 군산당, 조화당, 태극당 같은 빵집이 함께 시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들이 전국 곳곳을 점령했다.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내듯’ 동네 빵집은 문을 닫았다.
군산의 이성당은 살아남았다. ‘군산여행의 필수코스’가 되었다. 구시가를 걷는 사람들 중에서 이성당의 노란 빵 봉투를 들고 다니는 이들은 여행자들. 날씨에 아랑곳하지 않고 기다려서 빵을 산 순정파들이다. 군산 사람들은 ‘쿨하게’ 이성당 손님 자리를 내주었다. “맛있는 것도 많은데 나까지 가서 줄 서?” 하면서 동네 빵집에 간다.
그러나 먼 곳에서 찾아온 친구가 “이성당 팥빵 먹어보고 싶다”고 하면, 고향 떠난 지 오래된 지인이 “이성당 빵 맛 그대로냐”고 애절하게 물어오면, 기꺼이 빵을 사러 간다. 대포 카메라까지 들고 온 여행자들과 똑같이 줄을 선다. 한 번도 이성당 팥빵을 안 먹어본 사람처럼 맛을 상상해본다. 줄이 줄어들기를 기다리면서도 단 한 가지는 잊지 않는다.
“빵 살 때 뚱하게 있지 마라. 쥐도 새도 모르게 굴욕사진 찍혀서 인터넷에 돌아다닐 수 있으니까.”
첫 번째 사진은 군산시청, 나머지 사진은 남상천 작가가 제공해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