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을 꺼두어도 좋은 ‘핫 플레이스’

옥산 청암산

by 배지영
1.jpg
2.jpg

한밤중에는 완전히 깜깜하던 시절, 연애하는 처녀 총각들이 손잡고 걷던 큰길이 있었다. 술 받으러 심부름 갔다 오던 아이가 목말라서 막걸리 몇 모금 마시던 논둑길이 있었다. 가뭄에 물 한 방울이라도 더 끌어들이려고 처절하게 물꼬 싸움하던 집안의 가장들이 있었다. 머리에 새참을 이고서, 균형을 잡기 위해 한쪽 팔을 휘두르며 걷는 아낙들이 있었다.



1939년, 사람들의 삶이 스며있는 논과 길은 수몰 당했다. 옥산저수지가 되었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군산의 넓은 들판을 영원히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벼농사용 저수지를 만든 거다. 그로부터 30여년 뒤, 옥산 저수지는 군산 시민의 식수가 되었다. 누구도 쉽게 드나들 수 없는 통행금지 지역, 특별히 보호받았다.



“멀더 요원!”

“스칼렛 요원!”



미국 드라마 <X파일>을 보며 ‘요원’을 꿈꾸던 청년들은 옥산 저수지에서 정말로 요원 생활을 하기도 했다. 바로 공익근무요원. 드라마에 나오는 ‘FBI 요원’처럼 대단하지 않아도 좋았다. 그들은 날마다 밥지어먹고 족구 한판을 하고 나서야 요원 활동에 나섰다. 보트를 타고 돌면서 저수지 잠입에 성공한 낚시꾼들을 쫓아내는 일을 했다.

3.JPG
4.jpg

몇 년 전, 옥산저수지는 통행금지 지역에서 해제되었다. 수십 년 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저수지와 산에는 원시림과 방품림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자연 그대로의 자연이었다. 군산시는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고민했다. 시멘트를 들이붓거나 인위적으로 뭔가를 건설하는 ‘멍청한 짓’은 절대 하지 않았다.



그래서 청암산은 매혹적인 구불길(제주도의 올레길처럼 군산에는 구불길이 있음)이 되었다. 산꼭대기에 오르면, 옥산의 너른 들판과 멀리 군산 시내가 보인다. 오래 전에 논이었지만 이제는 저수지가 된 풍경을 보면 마음은 평화롭다. 수수꽃다리(라일락) 향기가 그윽할 때도 있다. 왕버들나무 군락도 있고, 산딸기에 정신을 팔게 되는 구간도 있다.



“잠시 전화기를 꺼두셔도 좋습니다.”



오래된 광고가 생각나는 대나무 숲도 지난다. 불이 나서 민둥산이 된 곳에는 오솔길이 나 있다. 다큐멘터리 <차마고도>에서 본 막막함과 고요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호수 같은 저수지를 끼고 걸으면 서너 시간이 걸린다. 물길을 따라 돌다가 산으로 가면 2시간쯤 걸린다. 시골 동네였던 청암산은 이제 관광버스를 탄 사람들도 오는 ‘핫 플레이스’가 되었다.

5.jpg
6.jpg


이전 05화오래 기다리는 건 괜찮아. 그러나 ‘굴욕사진’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