휙 지나칠 건가요. 군산에서 자고 가세요.^^

새만금 방조제

by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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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군산 뉴스에는 새만금 방조제 얘기가 빠지지 않았다. 바다를 메워서 만든 땅은 여의도 면적의 140배. 방조제 길이는 33.9km.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로 기네스북에도 올랐다. 수많은 사람들이 관광버스를 타거나 자동차를 타고 방조제에 왔다. 육지로 변했다지만, 여전히 바닷바람이 세게 부는 길을 자전거로 달리는 젊은이들도 많았다.



“오메, 애기 잘 봐야. 먼(무슨) 차들이 이러코도 많을까이? 이럴 줄 알았으믄 집에 가만히나 있을 것을. 전국에서 갈 디가 여기밖에 없을끄나?”



그해 추석 연휴, 전남에서 왔다는 한 아기 할머니는 말했다. 관광객들이 ‘바다에 만든 만리장성’에 서 있을 때, 그 바다에 기대 살던 사람들은 생계를 잃은 뒤였다. 무수한 생명들에게도 곁을 내주었던 바다. 해마다 4월이면 쫑찡이(도요새)가 호주나 뉴질랜드에서 날아왔다. 쫑찡이의 먹이는 갯벌과 염전에 사는 갯지렁이·조개·고둥·게. 모두 사라졌다.



새만금 인근 옥구 염전의 운명은 간척사업을 시작할 때 정해져 있었다. 공사를 당해낼 수가 없었다. 달이 하루에 두 번씩 바닷물을 끌어당겼다가 놓아서 밀물 썰물이 일어난다. 달은 변함없이 떴다 지지만 서해의 바다 일부는 육지가 되었다. 그래서 소금 생산도 못 한다. 농부, 어부, 염부로 ‘쓰리 잡’을 하며 평생을 살았던 한 어르신은 말했다.



"소금은 ‘온다’고 하는 것이여. 송진 가루가 날리는 4월에서 6월에 오는 소금이 좋아. 그때가 최고여. 그러믄 뭐 혀? 인자는 오들 못 하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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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척된 새만금은 소금, 물고기나 조개류, 어선이나 어민과도 멀어졌다. 그 사이에 세상도 변했다. 농지로 쓰려고 공사를 했던 땅의 쓰임새는 시대 흐름을 따라가기로 했다. 크고 작은 공장, 상가, 숙박시설 등이 들어섰다. 덤프트럭과 자동차들이 새만금 방조제를 지났다. 우럭, 고등어, 주꾸미, 갑오징어를 잡으러 가는 낚시꾼들도 방조제 위를 지나갔다.



끝없이 이어지는 직선의 길. 방조제 위를 달릴 때는 졸음운전을 경계하라는 운전자도 있었다. 여행자들은 잠을 깨기 위해서 방조제의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고군산의 섬이나 바다를 보고는 이내 길을 떠났다. 군산에서 영어 강사로 일하는 딸을 만나러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온 50대 여성 제인은 새만금 방조제에서 사진만 찍었다. 부안 내소사에서는 천천히 걸었다.



새만금 방조제는 건물의 담벼락 같은 곳이다. 그 안의 군산을, 새만금을 알려면, 들어가 봐야 한다. 좀 더 머물러야 한다. 이제는 다리가 놓여서 고군산의 몇몇 섬들은 배를 타지 않고 갈 수 있다. 군산 시내는 온전히 걸으면서 볼 수 있는 근대문화가 많다. 방조제 끄트머리에 있는 ‘새만금 33센터’에서는 조선시대 예언서 <정감록>을 볼 수도 있다.



“고군산 군도의 물이 300리 밖으로 물러나면 이곳이 천년 도읍이 된다.”



<정감록>에 나오는 예언이다. 우리나라 수도가 송악(개경), 한양, 계룡산, 가야산으로 옮긴 뒤에 고군산군도가 된단다. 이미 행정수도는 계룡산 인근인 세종시다. 고군산도는 새만금 공사로 육지화 되었다. 새만금이 천년 도읍지가 된다는 건 믿거나 말거나이다. 그러나 방조제를 지나 군산 시내로 오면, 시간이 멈춘 듯한 거리가 있다는 건 믿어주시라. 취향에 맞는 숙소를 골라서 한 밤 주무셔도 될 만큼 매력을 가진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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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군산시청에서 제공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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