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선유도
“기대한 것보다 훨씬 아름답네요. 이렇게까지 좋을 줄 몰랐습니다.”
처음으로 선유도에 온 육지 사람들이 말한다. 신선이 노닐 만큼 아름답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선유도. 그러나 섬사람들은 경치를 보고 살 겨를이 없었다. 섬은 그저 먹고살게 해주는 곳, 새끼들을 기르고 입히고 가르칠 수 있는 고마운 곳일 뿐이었다. 부지런하면 살게 해주고, 게으르면 죽어도 내버려두는 게 섬 생활이었다.
선유도 인근의 유인도들. 무녀도, 장자도, 신시도, 관리도 등에 사는 아이들은 자기 섬의 ‘국민학교’에 다녔다. 중학생이 되면, 우두머리 섬인 선유도까지 통학선을 타야 했다. 바람이 거칠어지면, 수업을 받다가도 집으로 돌아갔다. 섬에서 섬으로 가는 길은 배밖에 없었다. 선유도, 무녀도, 장자도 사이에 다리가 놓인 건 1980년대 후반이었다.
군산에서 선유도까지 2시간 반 넘게 배를 타고 가던 시절. 섬에는 물자가 부족했다. 선착장에 닿으면, 사람보다 짐이 더 많이 부려졌다. 여행 온 육지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고 장자도까지 갔다. 명사십리 해수욕장에서 물놀이를 하고, 선외기를 빌려 타고서 낚시를 했다. 초분(섬이나 해안지방에 전해오는 전통의 장례풍속)을 보러 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저기가 유명해요. <1박 2일>에 나왔잖아요. 차태현씨가 여행 온 사람들이랑 셀카 찍은 손 모양 등대예요. 어선들이 무사히 돌아오라고 기도하는 거죠.”
선유도에서 식당을 하는 아저씨가 말했다. 예능 프로그램에 선유도가 나오고는 관광객들이 늘었다. 섬사람들은 과거 시험을 보러 간 남편이 급제도 못 하고 첩까지 데려온 것에 충격 먹은 아내의 얘기를 해줬다. 아기를 데리고 나간 그 아내는 등을 돌리고서 바위가 되었다. 마을 사람들이 수호신으로 여겨서 지금도 매년 제를 지내는 ‘장자할매바위’ 얘기다.
선유 1구 몽돌해수욕장은 섬사람들이 가진 ‘비장의 카드’라고 했다. 해수욕장의 바닷물은 맑았다. 몽돌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고요해졌다. 몽돌해수욕장 옆 작은 섬 둘레에는 데크를 깔아서 산책로를 내놨다. 20분쯤 걸리는 길, 소나무 숲은 그늘이 되어주었다. 경치가 아주 근사한 곳에는 바다로 내려갈 수 있게 따로 길이 나 있다.
“망주봉 앞 갯벌은 바지락이 많아요. 선유도 부녀회나 어촌계에 가입한 사람만 캘 수 있어요. 섬에 5년 이상 살아야 그 자격이 나옵니다. 하루 일당이 20만 원에서 24만 원이에요. 물때가 있어서 날마다 일하지는 못 합니다. 섬사람들은 가난하지 않아요.”
가난하지 않은 섬사람들의 꿈은 무얼까. 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 거였다. 승선 시간을 계산하지 않고, 아무 때나 육지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것. 꿈은 서서히 이루어졌다. 배가 다니던 바다를 메워서 만든 땅 새만금. 덕분에 신시도는 섬 신세를 면했다. 2016년 여름, 8년의 대공사 끝에 신시도에서 무녀도까지 다리가 놓였다. 섬을 고향으로 둔 사람들이 말했다.
“어릴 때에 생각했던 게 현실이 되니까 엄청 좋네요. 육지 한 번씩 나오면, 자동차 다니는 게 그렇게 신기했거든요.”
원래 선유도가 있는 이 지역의 이름은 군산이었다. 무녀도, 장자도, 신시도, 야미도 같은 10여 개의 유인도와 수많은 무인도를 합치면 63개. 어린 최치원의 글 읽는 소리가 중국에까지 들렸다는 신시도의 월영봉에 올라보라. 그 말뜻을 알게 된다. 수십 개의 섬들이 무리지어 있는 모습은 딱 군산(群山)이다. 진짜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그러나 해군기지를 옮기는 조선 세종 때, 군산은 자신의 이름까지 줘버렸다. 진포는 군산이 되고, 군산은 고군산이 되었다. 인류가 소멸하지 않고 발전해온 것은 고군산 같은 숭고한 자세 덕분이었다. 부모들은 대가를 바라지 않았다. 자신의 젊음과 맞바꾸어 아이들을 키웠다. 섬사람들처럼 안 입고, 안 먹고, 안 쓰면서.
“나이 먹을수록, 뭐라도 손에 쥐고 있어야 한당게. 그래야 부모 노릇도 할 수 있는 거여. 자식이라고 마냥 다 퍼주믄 어치케 되는 줄 아는가? 피차 좋은 꼴 못 보는 거여.”
‘우리의 시대는 갔다는 것을 인정하자’고 써 붙인 경로당에서, 어르신들이 주고받는 말이다. 많은 것이 바뀌고, 살아가는 일은 더 고달파졌다. 노인이든, 청년이든, 스스로를 아낄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험한 일을 겪어도 중심을 잡는다고 생각한다. 자기 것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한 세상, 자기 이름까지 줘버린 ‘바보 같은 섬’ 이야기는 잊히지 않는다.
사진은 군산시청에서 제공해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