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개의 별 (2)
어릴 적부터 어딘가 별났던 아이는
‘다재다능상’을 받고 유치원을 졸업했다.
그때는 몰랐지.
애매한 재능의 저주에 빠져 헐떡이게 될 걸.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1학년이 되었다.
또 장래희망을 가져오란다.
이번에는 교실 뒤 게시판에 얼굴 사진과 함께 우리의 꿈을 붙일 거라고.
2년만에 없던 꿈이 생겼을리 만무했다.
자꾸 커서 뭐가 될 건지 정해오라는데,
하루 아침에 잘 알지도 못하는 단어를 꿈이랍시고 들고가는 것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뭐라도 써가긴 해야하니,
또 부모님과 함께 나의 꿈 궁리를 시작했다.
A4 이면지에, 빈 스케치북에,
때론 학습지 빈 공간에 낙서와 그림 그리기를 즐겼던 나에게,
부모님께서는 ‘디자이너’라는 꿈을 붙여주셨다.
언젠가 부끄러워서 말도 못 꺼낸 ‘공주님’을 생각하면
‘디자이너’는 꽤 쿨(cool)한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3학년.
이제는 꿈을 준비하는 포트폴리오를 만들 때란다.
앞 자리에 앉은 한 친구는
‘아나운서’라는 꿈을 아주 진득하게 꾸고 있었다.
주말이면 엄마랑 손 잡고 방송국 견학을 다녀오고,
어떤 아나운서와 함께 찍은 사진들을 보여줬다.
그 친구의 A4파일은 왜인지 멋있어보이는 이야기들로 차곡차곡 채워지고 있는 것만 같았다.
부러웠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있어
한 방향을 바라보고 달려가는 모습이.
그 친구의 꿈을 물심양면 지원해 주는 듯한 부모님도.
그녀를 따라하기 시작했다.
뭔진 몰라도 비슷하게,
‘기자’라는 꿈을 만들어냈다.
흘끗흘끗 그 친구의 포트폴리오를 보며
혼자만의 위기감을 느꼈다가,
질투심과 부러움에 흠뻑 빠졌다가,
초라한 나의 가짜 포트폴리오를 보며
스스로에게 실망하기도 했다.
‘나는 왜 저 친구처럼 못할까?’ 하면서.
-
아무개의 꿈이 진짜 자기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그 당시의 나는 그녀가 부러웠다.
현재 그 친구는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쯤이었을까.
‘아나테이너’라는 단어를 접했다.
아나운서와 엔터테이너의 합성어로,
뉴스뿐만 아니라 예능을 비롯한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활동하는 방송인으로서 아나운서를 일컫는 말이다.
몹시 끌렸다.
여러 가지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 때문이었을까?
최연소 나이로 입사해 방송계를 날아다니는
장예원 아나운서를 퍽 동경했다.
그때부터였다.
내 마음 속 작은 꿈을 남몰래 품기 시작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