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개의 별 (4)
남들이 우러러보는 외고생이 되었지만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내가 잘하는게 도대체 뭔지,
설령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업으로 선택해야 하는지,
하물며 나는 이 세상에 어떤 쓸모가 되어야 할지.
‘장래희망’은 여전히 빈칸으로 남았고,
취미와 특기는 평생의 난제였다.
진로는 도대체 어떻게 정하는 건데.
주위 친구들은 선생님, 간호사, 군인, 변호사...
척하면 척 알아먹을 직업을 골라 진로(사실상 대입)를 준비하는데,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은 ‘하나의 단어’로 정의내릴 줄을 몰랐다.
과거의 기록을 파고드는 역사가 좋았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오늘날의 모습과 겹쳐보이는 사건들,
과거의 날들에 자기만의 방식으로 시대적 환경에 열과 성을 다해 저항한 사람들,
그리고 결국, 그들이 세상에 내보인 변화!
항상 그런 것들이 궁금했다.
우리 동네의 지명에는 어떤 유래가 있을까?
내가 지나다니는 이 길에는 어떤 역사가 서려있을까?
허름했던 이 길이 예술촌이 되기까지 어떤 인고의 과정을 거쳐왔을까?
사학과 출신인 아빠는 그런 내가 조금 안타까우셨을지도 모르겠다.
꿈은 모르겠고,
역사 탐구가 재미나니까 문화재청에 들어가겠다고 깝치는 딸래미가,
조금은 더 큰 꿈을 꾸길 바라고 계셨을지도.
고등학교 2학년.
제대로 된 진로를 결정해야 할 때란다.
진로가 갑자기 바뀌면 수시 전형에 합격하기 쉽지 않을 거라며,
면접장에서 ‘꿈이 바뀐 이유’를 아주 합당하고 상세하고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만회할 수 있을 거라며,
어른들은 으름장을 놓았다.
큰일 나는 줄 알았다.
유치원 때부터 들어온 질문을
열 일곱이 되도록 답을 찾지 못한 내가
모자란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꿈 좀 바뀔 수도 있잖아.
대학을 가도 못 찾는게 부지기수인데.
그때는 알지 못했다.
문화 마케터
열심히 인터넷 서핑을 하며 진로희망을 채울 적당한 단어를 찾다가,
‘문화 마케터’가 마음에 쏙 들어왔다.
무얼 하는 직업인지는 모른다.
그 실체가 있는 건지도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언어, 문화, 콘텐츠, 역사, 도시재생...
이런 것들에 마음이 끌리는 나란 사람을
왠지 이 단어가 설명해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도, 어른들도,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문화 마케터’의 꿈을 안고,
면접장에서 동아시아의 평화를 떵떵거리며
중앙대학교 아시아문화학부에 입학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