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N개의 별 (5)

by 옥돌
대학 합격

꿈에 그리던 상경을 했다.

경남 시골바닥에서 올라온 갓 스무 살에게

서울에서 마주한 세상은 몹시 크고도 넓었다.


하고 싶은게 많았다.

엄마의 언어를 빌리자면,

나는 어릴 적부터 ‘하고잽이’였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한 번 눈에 들어온 거라면

일단 하고봐야 호기심이 풀렸다.


열심히도 살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견디지 못해

항상 무언가 바삐 해내고 있었다.


방송국 제작국원으로서 라디오 방송을 만들고,

미디어 봉사 단체에서 소외계층을 위한 온라인 후원 컨텐츠를 만들고,

초등학생을 위한 창의 교육 캠프를 만들고,

학보사 기자로서 취재하고 글 쓰며 종이 신문을 만들고,


그 사이 유학생 멘토링, 해외연수 프로그램 등등

교내에서 주관하는 행사들도 놓치지 않고 부지런히 참여했다.



학보사’에서 대학 3년을 보냈다.

(방송국과 신문사, 수습 기간까지..)


길 위에서 사람을 만나고,

관점을 뒤집어가며 질문을 건네고,

그들의 이야기를 고민 끝에 글로 옮겨내고,


때때로 영상에 들어가는 나레이션도 녹음하고..


지하 편집국의 새벽을 불태운 3년도

어느새 이별을 고할 때가 왔다.


동료나 선배 기자들은 방송국에 신문사에

약속이나 한 듯 인턴에 정직원까지 척척 가는데


나는 왜인지,


언론인의 길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남들따라 휩쓸려 가고 싶지도 않았다.



처음 학보사에 들어갔을 때,


신입 기자보다 부장이 일을 더 많이 하는 구조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다.


후배 기자를 위해 머리를 짜내며 발제하고,

우리들의 기사를 밤 늦게까지 첨삭하고,

매주 어김없이, 조판 과정을 끝까지 함께하는

선배 기자들이 멋있어 보였다.


그러나,

작은 언론을 경험하며 마주한 한계는 분명했다.


취재, 녹취본 정리, 기사 작성이 반복되는 루틴,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의 이야기를 담는 것에 반해

변화에 극히 보수적인 조직 분위기,

언론은 실수가 용납되는 세계가 아니기에

여타 조직에 비해 수직적인 구조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나는,

높고 낮음을 가르기보다 ‘자유’를 갈망했고,


어느 누구도

어느 누구보다 높지 않길 바랐다.


이상과 현실 사이 좁혀지지 않는 간극에

갈수록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편집국에서 첫 기사를 마감하던 날,

초고 위에 신명나게 그인 '빨간 줄'을 기억한다.


선배 편집장님께서는

“기사는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게 아니야”

라고 말씀하셨다.


나의 문체를 지워야 했다.


감정과 색깔은 과감히 덜어내고,

팩트, 그리고 아주 약간의 관점만을 담아

간결하고 정확한 기사를 써야만 했다.


왜 규격화된 형식의 글을 써야 하는지

왜 개인의 색깔을 죽이려 하는지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빨간 줄을 자꾸만 그어대는 편집장님이 괘씸했다.



그리고 어느새, 나도 보도부장의 위치에 올랐다.


나 역시 후배 기자들의 글에 빨간 줄을 쉬이 긋고,

글 형식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실수한 후배 기자들에게 단호한 목소리로 혼을 내고,

기본 원칙에 서투른 이들을 못마땅해 하고 있더라.


(‘기본’이라는 기준도 저마다 달랐을테지만.. 당시의 내 좁은 시야에서는 마땅히 해야 하는 일만 쳐내기도 버거웠다. 호되게 굴어서 미안해 후배들아.)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곳은 그래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