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뭐 하는 사람인데?
나는 커뮤니티 매니저였다.
지금도 여전히 커뮤니티 매니저다.
작년 8월까지는 ‘회사’에 소속되어 커뮤니티 매니저라는 직함을 달았다. 공간이라는 하드웨어 안에서 소프트웨어, 즉 사용자 간 연결을 만들어내는 일을 했다.
그리고 현재, 프리랜서라는 명분으로 이곳저곳에서 커뮤니티를 꾸리고 모임을 운영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한 공간을 만드는 데는 많은 힘이 든다.
그 공간을 지켜내고 운영하는 데는 더 큰 품이 든다.
(지극히 커뮤니티 매니저의 입장입니다.
건축가를 비롯한 멋진 공간을 만들어내는 분들 존경하고 존중합니다!)
새 건물을 짓고, 근사하게 꾸며만 놓는다고 공간이 저절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잘 만들어진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은,
다름 아닌 '사람' 이다.
사람 없는 공간은 맛이 없다. 건조하다.
경쟁사 조사를 하겠다며 다른 코리빙 브랜드에 룸 투어를 갔던 적이 있다. 공유 주방, 헬스장, 워크라운지, 빨래방.. 갖추고 있는 시설은 비슷했다. 그런데 어딘가 분위기가 싸늘했다.
그곳에 상주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공간을 지키는 이가 없으니, 시설 상태와 무관하게 이 건물이 관리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어려웠다. 또한 새로운 발걸음에도 환대받을 길이 없다. 공간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그저 느낌적인 느낌에서 오는 '경험'이 전부인데.
그렇다면,
좋은 공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단순히 예쁘고 멋진 인테리어만으로는 안된다.
더불어 빠뜨릴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있다.
사람과 사람 간의 연결
그 역할을 기꺼이 맡아내는 사람이 바로,
커뮤니티 매니저다.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공간을 더욱 즐겁게 이용할 수 있도록
기획하고 운영하는
'커뮤니티 매니저'에 의해 비로소 완성된다.
스무 살부터 줄기차게 여행을 다니며 ‘게스트하우스’만을 고집했던 이유는, 사장님들이 살아오신 세월과 다채로운 경험, 이를 바탕으로 형성된 철학이 곳곳에 고스란히 녹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공용 라운지에서 이루어지는 여행자 간의 우연한 만남. 하루 끝에서 나누는 여행자들의 대화에는 나이와 직업 등 외부 조건들은 그다지 대두되지 않았다. 오늘 어떤 곳에서 시간을 보냈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내일은 또 어디로 발걸음을 옮겨볼 건지 그런 이야기가 오갔다.
요즘은 이성 만남을 목적으로 하는 파티형 게스트하우스도 많다. 인간이 살아감에 있어 ‘사랑’은 둘도 없이 중요한 요소임에는 두말할 것 없으나, 우연을 가장한 인연을 만들어내려는 시도는 다소 어색하게 느껴진다.
여행 자체가 아닌, '이성과의 만남'만을 목적으로 찾은 곳에서 얼마나 길고 깊은 인연이 탄생할까 하는 회의적인 생각도 든다. 그러나 ‘연결’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는 이성(異性)적인 목적을 해소하고픈 이들도 분명 존재할 테니,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호주에서 100일 남짓 여행을 하면서 봉사자로 지냈던 요가원이 있다. 그곳은 돈을 받고 일하는 개념이 아닌, 숙식을 제공받고 하우스키핑이나 청소, 리셉션 등 할당된 시간만큼 업무를 수행하는 시스템이다.(게스트하우스 스탭처럼)
그곳에서 3주가량 봉사자로 지내면서, 게스트부터 봉사자까지 자유롭게 오가는 사람들 속에서 피어나는 대화와 세계 각지에서 방문한 이들이 한데 모여 이뤄진 다양성, 이런 것들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시드니 근교, 푸르른 자연 속에 자리한 그곳에서는 어떠한 연결도 부자연스럽지 않았다.
언젠가는 이러한 공간을
직접 만들고 싶다.
누구든 편안히 찾아와서 머물고 싶은 만큼 머물다 가는 그런 공간. 자유로운 분위기 속 어떠한 시스템이 자리 잡고 있어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면 물 흐르듯 흘러갈 수 있는 인연의 생태계.
이러한 생각의 흐름으로 모바일 앱을 만들던 나는,
'오프라인 공간'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104일간의 긴 여행을 마치고, 오프라인 공간에서 일할 수 있는 자리를 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 지향하는 바와 비전이 꼭 맞는 회사를 찾았다. 훌륭한 기획과 자본이 맞닿으면 이런 일도 해볼 수 있구나!
속전속결로 진행된 채용 프로세스와 함께, 해당 브랜드가 운영하는 공간의 '커뮤니티 매니저'가 되었다.
근무지로 배정된 곳은 신규 사업으로 지어진 공유주거 공간이었다.
함께 살기, 코리빙(co-living)이라고도 한다.
우리 인간의 삶에는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는 스테이지가 있다. 학생, 졸업, 취준, 커리어, 결혼 같은 것들. 요즘은 단계별 시기나 그 형태가 유연해졌지만, 때가 되면 으레 해야 할 (것만 같은) 것들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비슷한 스테이지를 지나고 있는 이들끼리 만나면 서로의 고민을 나누고, 제각기 살아가는 방식에 관해 이야기하는 열띤 대화의 장을 벌이게 된다. 서로 간의 연결은 자기만의 답을 찾아가는데 도움을 주는 등 긍정적인 시너지를 낸다.
극심한 방황의 시기에 발 닿은 호주 요가원에서, 나만의 일과 삶을 찾아가는 세계 각국의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며 막막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곤 했듯이 말이다.
우리 집(코리빙 공간) 멤버들이
‘즐겁게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처음 입주하는 순간부터 공유주거라는 모델에 점차 적응하고,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면 이웃 간의 느슨한 연결이 주는 따뜻함과 다정한 향기에 젖어들길 바랐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밝게 인사도 건네보고, 라운지에 찾아온 이들에게 밥은 먹었냐며 오늘은 어떤 일을 하러 오셨냐며 조그만 쿠키를 건네며 말을 붙여보기도 했다.
새로운 입주자들에게는 이 공간에 편안히 적응할 수 있도록 ‘뉴조이너’ 행사를 기획하고 운영했다. 그 대상이 외국인이냐, 한국 학생이냐 직장인이냐, 또는 프리랜서냐에 따라 그들이 코리빙 생활에서 얻고 싶은 것들을 알아가며, 멤버들의 성향에 따라 유쾌한 경험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보려고 끙끙대기도 했다.
그러나,
회사에 소속된 커뮤니티 매니저의 한계는 분명했다.
2편에 계속
직장 밖에서 커뮤니티를 기획하며 만들어가는
[ 옥돌 (okdol) ] 입니다.
현재 [ 고유한 명상 모임 : 2기 ] 절찬리 모집 중에 있습니다.
• 매일 5분씩 숨 쉬는 시간을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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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할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평범한 이름으로
비범한 방황을 쓰는,
고유한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written by. 옥돌
위 사진은 밑미홈지기 활동 당시 모습으로,
이전 직장과 무관함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