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마주친 한계와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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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회사에 소속된 커뮤니티 매니저의 한계는 분명했다.
첫째, 역할의 모호성이다.
코리빙하우스(공유주거 시설)에서 근무할 때, 회사 밖에서 ‘커뮤니티 매니저’라고 소개하면 ”무슨 일 해요? “라는 질문을 피해 가지 못했다.
몇 번이나 반복했던지라 이제는 머쓱하게 시작하는 설명.
”코리빙하우스라고, 사람들이 같이 사는 공유주거 공간에서 일해요. 입주 관리, 공간 운영, 멤버 대상 커뮤니티 프로그램 등 업무는 다양한데요. 쉽게 말해서 공간에 상주하는 매니저 역할이죠. “
때때로 우리가 하는 역할을 더 깊이 알고 싶어 하는 이들도 만나게 된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느냐’라고 물어오면 사실 마땅한 대답이 없다. 커뮤니티 매니저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다‘ 하는 사람이니까.
당신이 어제 본 의자가 오늘도 제자리에 있다면, 의자가 가만히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의 엉덩이를 거쳐갔겠냐만은, 커뮤니티 매니저의 손길이 닿아 매일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잔잔바리 업무부터 콘텐츠를 기획하고 만들어 고객에게 전달하고, 현장에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까지 커뮤니티 매니저의 업무는 무궁무진하다. 늘 깨어있는 상태로 현장을 바라본다면 단순 물품 정리뿐만 아니라 그곳을 이용하는 멤버들의 경험을 위한 모든 일을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뭐 하는 사람이지?
공간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루틴한 업무가 최우선이다. 청결 상태 및 비품 확인, 입퇴실 관리, 멤버 응대(CS) 등등. 이는 누군가 꼭 해야 하는 일이지만, 이것‘만’ 하고 있으면 매너리즘에 빠지기 부지기수다. 머리를 싸매며 고민하지 않아도, 눈 크게 뜨고 정신만 차리고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필수적인 업무만 처리해도 공간은 별문제 없이 돌아간다. 그러나 진정으로 공간을 사랑하고, 멤버들의 ‘더’ 유쾌한 경험을 바라는 매니저라면 그것만으론 부족할 것이다.
커뮤니티 매니저를 직접 지원했다면, 루틴한 운영 업무만 하길 바랐던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 간의 연결, 그 속에서 하하호호 피어나는 즐거운 경험, 뭐 이런 이미지를 그리며 지원서를 보내지 않았을까. 저마다의 역량에 따라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방식은 다를지라도(부드러운 커뮤니케이션 스킬로 멤버가 겪은 문제를 편안하게 해결하거나, 운영 업무 또는 사용자의 여정 속 비효율을 제거하여 환경의 편의성을 제공하는 등), 어느 누구도 현상 유지를 위한 일‘만’을 원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부푼 꿈을 안고 입사한 커뮤니티 매니저는 하고 싶은 일들이 줄줄이다. 이것도 기획해 보고 싶고, 저것도 만들어보고 싶고...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녹록지 않다.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이 우선인 것은 당연지사. 그런데 ‘해야 하는’ 운영 업무의 비중이 너무 커져버리면 공간에 새로움을 들일 여유가 없다. 바삐 이슈를 쳐내다 보면 그저 오늘이 무사히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이들도 생겨난다.
어떤 날은 이슈 해결만으로 하루가 다 가버리고,
또 어떤 날은 별일 없이 텅- 비어있기도 했다.
그래서 혼란스러웠다.
다 할 수 있다는데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제안은 반려되고 또 반려되고. 이대로 별일 없는 공간 만들기가 커뮤니티 매니저 임무의 전부인 건지. 커뮤니티 매니저는 특별한 일을 만드는 사람이 아닌, 별일이 없게끔 하는 사람인 건지.
아무리 운영 업무가 0(제로)에서 -(마이너스)가 되지 않게 균형을 맞추는데 초점이 있다지만, 0에서 1을 만들기 좋아하는 메이커 성향의 나는, 종종 커뮤니티 매니저라는 창의적인 이름 뒤에 가려진 이면에서 못내 아쉬워하곤 했다.
‘커뮤니티 매니저’란 멋들어진 이름에 걸맞게,
새로운 일의 의미를 불어넣어 줄 ‘빈틈’이 필요했던 것이다.
분명 의미 있는 일인것 같은데..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공간을 지키고, 멤버와 가장 가까운 현장에서 소통하며 그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일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데, 일에 대한 아쉬움은 줄어들 줄 모르고 눈덩이처럼 불어나기만 하는 걸까.
앞서 커뮤니티 매니저는 ‘다’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직무의 역할과 업무의 범위는 어느 조직(공간)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어떤 공간은 단순 공간의 현상 유지만을 바랄 수도 있고, 어떤 공간은 운영에 들이는 비용과 관계없이 고객에게 최고의 경험을 선물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을 수 있다. 극단적인 두 예시에서, 직함은 동일할지라도 그들이 하는 일과 고민은 하늘과 땅 차이일 것이다.
딱 한 줄로 설명되지 않는, 이 일 저 일 다 해내는 커뮤니티 매니저는 다양한 관심사와 활동 분야를 폭넓게 아우르는 “다능인”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봐온 커뮤니티 매니저는 자기만의 예술 활동 하나쯤은(혹은 두 개, 세 개, 그리고 N개까지) 고이 지켜내고 있었다.)
그 말인즉슨, 직장 밖에서도 기량을 펼칠 수 역량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커뮤니티 매니저는 스스로 만들어내고, 고객에게 닿고, 운영까지 할 수 있는 굉장한 사람이다. 이렇게 다채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직무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직무가 아닌 직장의 한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직무의 한계 ?
직장의 한계 !
아무리 수평적인 회사일 지라도, 흐르는 시간과 사람 속에 형성된 암묵적인 규율이 있고, 직위에 따라 권한과 책임의 범위가 상이하기 마련이다. 또한 직장은 다양한 이해관계가 존재하는 곳이기에, 아무리 굉장한 기획이라도 그것을 현실화할 수 있는 기회가 쉽사리 오지 않는다.(특히 주니어에겐. 굉장한 기획인지 아닌지는 고객의 반응에 달렸겠지만.)
다능인의 삶은 어떠한가. 여러 분야를 폭넓게 오가며 뭐라도 만들어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다.
‘의미‘를 찾지 못한다면,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하는 일의 비중이 대폭 늘어나면 의욕이 뚝! 떨어진다. 이러한 한계는 직장이라는 틀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하는, 또는 분리되어 자기만의 일을 개척해야 하는 사람임을 반증했다.
커뮤니티 매니저는 다 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회사에서는 개인이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다.
(여럿의 머리를 맞대고, 변화를 인내하는 시간과 힘이 필요하다. 나에겐 그게 좀 많이 부족했다. 재빠르게 실행하고 후딱 반응을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한계가 부서지다.
‘직장의 한계’였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리고 반년 후, 그 믿음의 한계가 산산이 부서졌다.
데스커라운지에서, 커뮤니티 매니저(커넥터)들이 얼마나 환한 미소로 일하고 있는지를 봐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본 것만이 그들의 모든 얼굴은 아닐 테지만, 내가 경험한 세상만이 전부도 아니었다. 굳게 쌓아 올린 편견, 나만의 작은 세계가 또 이렇게 부서지고 무너진다.
햇살처럼 밝은 그들의 표정 뒤에는 얼마나 든든한 서포트가 뒤따르고 있는 걸까. 트루스 그룹이 커넥터들을 어떻게 대하고, 어떤 경험과 복지를 제공하는지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사실상 운영단은 돈을 벌어오는 곳이 아니다. 쓰면 더 썼지. 따라서 비용 투자에 있어 하드웨어 개발이나 마케팅 등에 우선순위가 밀리기 십상이다.
아무리 이전 단계에서 가설을 세워 근사한 물질을 만들어내더라도, 고객을 직접 만나는 연결 포인트는 운영단, 커뮤니티 매니저다. 이들을 향한 투자와 비용은 즉시 눈에 보이는 결과로 나오지는 않지만, 이용자(고객)에게 어떠한 경험과 잔상으로 고스란히 남는다. 이용자는 경험 데이터에 입각해 해당 서비스를 재이용할지, 더 나은 대안을 찾아 나설지를 결정한다. 본능적으로.
끝나지 않는 질문
고객을 가장 가까이서 만나는 운영팀 소속 커뮤니티 매니저로 존재하면서도, 내 역할에 관한 질문은 끊이지 않았다.
‘커뮤니티 매니저가 뭔데?’
‘무슨 일을 하는데?’
‘그 일을 왜 하는데?’...
남들이 물어왔던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계속 던졌다. 커뮤니티 매니저? 콘텐츠 만들고, 멤버 또는 대중에게 전달하고 서비스를 운영하는, 뭐든 다 하는 사람이라곤 하는데... 그럼 조직에서 난 무슨 역할을 하고 있지?
이런저런 의문들은 일에 대한 혼란으로 이어졌다.
‘여기서 난 뭘 하고 있지?’
‘이것저것 하다가 이도저도 안 되는 거 아냐?’
‘나중에 이직할 때는 어떤 직무로 가야 해?’
커뮤니티 매니저라는 직무가 어딨어. 운영이면 운영, 기획이면 기획. 그렇다고 운영만 하는 사람은 싫은데.. 대학 전공도 하나를 못 정해서 복전을 여섯 개나 신청하더니, 성인이 되어서는 직무를 못 골라서 이 사단인 거니! 한평생 제너럴리스트의 삶을 살고 있지만, 이제는 스페셜리스트가 될 수 있는 나만의 분야를 찾고 싶다.. 이런 생각들이 매일 같이 오갔다.
일과 진로에 관한 고뇌에 빠져있을 때쯤,
한 교수님과 나눈 대화가 좁은 시야를 깨웠다.
“이 분야(공유주거)에서 플레이어는 어느 정도 정해졌어. 이제 하드웨어는 누구나 만들 수 있다고.
그런데 소프트웨어는? 아직이야. 전문가가 없어.
앞으로 옥돌 씨가 큰 일을 하고자 한다면, ‘내 것’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커뮤니티 매니저가 굉장한 기회일 수 있어요. 사람을 다루는 역할은 갈수록 더 중요해질 거거든.
그러니 이곳에서의 경험을 다른 데 가서 써먹을 수 있게 잘 정리해 둬요. 기록해야 해. 나만의 프로젝트를 만드는 거지.”
교수님의 진심 어린 조언 덕분에 나에게는,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코리빙하우스 오픈부터 반년 간의 운영 에피소드가 회고록에 고스란히 남았다. ‘커뮤니티 매니저’란 직무를 탐구하느라 무수하게 찾아다닌 커뮤니티들 덕분에 나는 커뮤니티 광, 코리빙 마스터가 되었다.
(관련 인사이트는 공개 가능한 선에서 한번 가져와 보겠습니다.)
고민과 고심과 고뇌의
결과
커뮤니티 매니저는 기획자다.
온/오프라인 공간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끊임없이 why?를 외치며 해결방법을 강구한다.
커뮤니티 매니저는 마케터다.
공간을 다채롭게 할 콘텐츠를 만들고, 이 사실을 멤버(고객)들에게 알리고, 인원 모집이 덜 되면 홍보물을 비치하거나 한 명 한 명 붙잡고 참여 의사를 물어보기도 한다.
커뮤니티 매니저는 운영자다.
공간 내 비품과 환경을 관리하고, 사람(관계의 불화, 빌런 등) 또는 공간의 새로운 이슈(시설이 부서지거나 분실, 고장 등)는 없는지 부단히 살핀다.
커뮤니티 매니저는 기획자이자 마케터이자 운영자,
사람과 공간, 사람 간의 연결을 만들어내는
“커넥터”이다.
결국 커뮤니티 매니저는 조직에 속해있든 속해있지 않든,
얼마나 의미 있는 연결을 많이 만들어 내는지가 관건이다.
휴먼 터치에서 나오는 다정함과 따스함.
그 역할은 AI가 대신할 수 없다.
모바일 앱도, GPT도, 그 어느 것도 대체할 수가 없다.
당장 쿠*, 네*버 쇼핑 등으로 온라인 주문을 할 수 있음에도, 굳이 오프라인 시장을 찾아가서 직접 만져보고, 점원과 소소한 대화를 나누고,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고 종이 쇼핑백에 새 물건을 담아 오는 이유다.
그것이 직장 내 커뮤니티 매니저 생활,
직장 밖 여러 커뮤니티를 이끌어보며 내린 결론이다.
나는 현재, 직장 밖에서 굳건히 일어서서
커뮤니티를 기획하고 운영하며 ‘내 것’을 만들어가고 있다.
세상의 모든 커뮤니티 매니저를
응원합니다!
직장 밖에서 커뮤니티를 기획하며 만들어가는
옥돌(okdol) 입니다.
현재 [ 고유한 명상 모임 : 2기 ] 절찬리 모집 중에 있습니다.
매일 5분씩 숨 쉬는 시간을 가지고, 명상 경험을 기록하고 나누는 온라인 모임입니다.
요가안내자로서 전해드리는 '주간 가이드'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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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할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평범한 이름으로
비범한 방황을 쓰는,
고유한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written by. 옥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