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1.08
나름 ‘시’에서 태어나서 서울 물도 몇 년 먹었는데, 이제 예산 ‘군’으로 내려가서 살게 됐다. 이제 겨우 4개월 차에다가 귀촌이라 하기에는 읍내에 살고 있지만.. 아무튼 로컬 생활에 대한 감회를 작성해 보려고 한다.
귀촌, 귀농하면 여유롭고 평화로운 삶을 떠올리듯 확실히 대도시에서의 삶보다 조용하고 덜 자극적이다. 왜인지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아등바등 살아야할 것 같은 기분이 덜 든다. ‘갓생’에 대한 불안감이 아예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이렇게 살아도 괜찮구나 느낀다. (그냥 살래 걍생)
하지만 덜 자극적인 생활 환경은 그만한 콘텐츠가 적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람이 없어서 한가로운데, 그래서 한산하다. 특히 젊은 사람 찾기는 더 어렵다. 다들 어디 숨어있는 건지, 진짜로 없는 건지..
서울에 올라와서 길거리를 돌아다니면 볼거리 들을 거리 먹을 거리 체험 거리들로 눈이 바삐 움직인다. 이런 콘텐츠가 적기 때문에 한가로운 분위기가 나는 것도 있지만, 사람이 모여들려면(정주인구까지는 아니더라도 관계인구를 늘리려면) 지역 색깔을 담은 콘텐츠들이 더 채워져야 한다.
소위 ‘요즘 느낌’의 패키징을 한 디저트 가게는 꽤 생기고 있지만 스토리를 담은 가게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그래서인지 외관은 오히려 투박하지만 진심으로 가게를 운영하고 계신 분들에게 마음이 간다.
히말라야 등산을 좋아해서 히말라야 설산을 모티브로 음료를 만들었다는 사장님, 실수해도 괜찮은 안전한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싶다는 상담가이자 목사님이자 카페 사장님, 우리집 칼국수가 재료도 특별하고, 맛도 건강도 뛰어나다고 자부하는 사장님, 은퇴 후 새 삶응 아로마에서 찾았다는 공방 사장님 등등. 아직은 큰 일을 하는 것보다 자그마한 일이라도 본인의 것에 애정을 갖고 진지하게 운영하는 분들이 눈에 들어온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고.
약 2시간이면 서울에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지만, 여기에만 있다보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되는 기분을 지울 수 없다. 더 큰 물에서 놀고 싶은 욕망과 나만의 우물에서 안주하고 싶은 게으름이 충돌한다.
분명한 건 격주에 한 번은 다른 지역에 가서 새로운 자극을 넣는 활동이 필요하다. 오랜만에 연희동을 둘러보는데 우리 지역(?)에 어떻게 적용해볼지를 고민하게 되더라. 우리 천변에도 이런 상점이 있다면, 이런 공간이 있다면 더욱 걷기 즐거운 거리가 될텐데 하면서.
보통의 ‘시’나 서울과는 차원이 다른 대중교통. 차가 없으면 교통약자로 전락한다. 장롱면허의 먼지를 털어낼 때가 온 것 같다. 차량 구매는 아직 망설이는 중이지만..ㅠ (오도바이 갖고싶다...)
그래서인지 토박이 친구들은 일찍이 차를 사고 운전을 하고 있다. 서울에서는 “어느 쪽(동네)으로 갈까” 였다면 이곳에서는 “어느 쪽(지역)으로 갈까?”라고 말한다. 다른 지역을 넘나들며 놀러다니는게 일상. 서울에서는 다른 지역으로 벗어나는게 엄청 큰일처럼 느껴졌는데 여기서는 한시간 남짓한 거리에 다른 색깔을 지닌 지역들이 분포해 있다는게 신기하다.
마을 공동체가 이런 거구나.
출근 안 한 날에 세탁소 사장님이 나를 찾으셨다고 한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몰랐던 도시생활과 달리 근처 사는 청년들끼리 모여 하루가 멀다하게 밥을 같이 먹고 이 지역에서 무엇을 만들어가고 싶은지 이야기를 나눈다. 때로는 실없는 농담들이 서로의 활력소가 되어주기도 한다.
마치 마을이라는 거대한 기숙사에서 학교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어른들을 위한 학교랄까? 지역이 그러한 역할을 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너무나 획일적인 교육 아래서 스스로 생각하고 경험하는 시간을 덜 가져왔잖아. 물론 그곳에 정주하기를 선택하는 청년들이 있어야 돌아가겠지. 어쨌든 이곳에 와서 나는 함께 살아가고 있다.
관계가 전부다. 알음알음 돌아가는 일들이 많다. (장점일 수도, 단점일 수도)
부동산에 올라와있는 매물보다 이장님을 통한 소식,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유리창에 붙은 전단지를 통해 접하는 경우가 더 많다. 관계를 잘 구축하다보면 생각지 못한 기회가 찾아오기도 한다.
누군가는 텃밭을 일구는게 꿈이라고 말하고 다니다가 어르신으로부터 작은 텃밭을 선물 받고, 교육자의 꿈을 한켠에 두던 나는, 지난 로컬 토크쇼에 초대했던 사장님 덕분에 대안학교 선생님으로 일할 기회를 만났다. 하나의 문이 닫히고 또 새로운 문이 열리는 기분. 도시에서보다 나를 더 소중하게, 필요로 해주는 곳이 있음에 참 감사하고 행복하다.
얼마나 이 지역에서 살게 될 지는 모르겠다. 바다가 보이는 마을, 조금 더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 살고 싶은 마음도 있고, 더 넓은 세상을 돌아다니며 보고 싶은 마음도 여전히 한 켠에 남아 있다. 이제 막 이 지역에 적응한 것 같으니 조금 더 살아보자는 결심이다. 여기 사람들과도 서로 믿고 의지하며 좀 더 섬세하게 합을 맞춰보고 싶고, 새롭게 구상하는 일들도 기대가 된다.
예산에 있는 동안 조금이라도 젊은 활기를 더하고 재미난 이야기들을 채워갈 수 있길.
현재, 저는 서울에서 거주하며 주 2일을 예산에서 머무는 5도2촌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서울과 예산을 오가며 지내는 ‘듀얼라이프’ 이야기를 써내려갈 예정입니다.
어떤 일을 하냐고 물으신다면..
예산에서는 3월부터 사과꽃 발도르프학교 영어 교사와 지역신문 객원 기자로 활동할 예정이고,
서울에서는 이것 저것 기회가 닿는 일들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바람 잘 날 없었던 진로 방황기도 곧 브런치에서 들려드릴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