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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초량 Sep 22. 2023

C언어 전력 질주

컴퓨터 공학과의 태초 마을. 모두가 밟는 첫걸음. 그것은 바로 C언어이다. 프로그래밍의 기초를 배운다고 하면 C언어를 사용한다.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는 학과라면 대부분 1학년 1학기에 C언어 수업이 있다.


게임에서 그러하듯 태초 마을은 스타팅 포켓몬을 받고 여행을 떠나는 곳이다. 머물러 있는 곳이 아니라는 뜻이다. C언어라는 스타팅 언어도 마찬가지이다. C언어를 처음 받았지만 앞으로 나아가면서 다른 언어를 만나게 된다. 스타팅 포켓몬으로만 계속 싸우는 게 아닌 것처럼 특정 분야가 아니고서는 C언어를 잘 쓰지 않는다. 그런데 곧 떠날 태초 마을에서 전력 질주를 한 사람이 있다고? 누가 그런 짓을 해? 그게 바로 나다.


내가 C언어를 처음 만난 건 엉뚱하게도 디자인학과를 다닐 때였다. 영상 디자인을 하다 보면 코딩할 일도 있다면서 C언어를 가르쳤다. 하필이면 나는 디자인에는 재능이 없고 C언어를 더 잘했다. 이 사실은 내가 개발자가 되는 데에 일조하였다. 재수하고 원서를 쓸 때 ‘C언어 배워봤으니까 괜찮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을 해 버렸으니까. 그걸 시작으로 컴퓨터 공학에 발을 들여 버렸으니까.


새로 입학한 학과에서 C언어를 가르친 교수님은 기초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셨나 보다. 시험을 한 달에 한 번씩 보자고 하셨다. 과제도 매주 내주셨다. 그러면서 책정하신 A+의 비율은 높지 않았다. 입학한 지 한 달도 안 되어 치러진 첫 시험. 난이도는 극악이었다. 나는 낮은 점수를 받지는 않았음에도 불안해졌다. 


‘남은 시험을 망치면 A+를 놓칠 수도 있겠네. 어떻게든 장학금을 받아야 하는데.’


사립대학이었기 때문에 등록금이 비쌌다. 우리 집 사정으로는 장학금을 받지 않으면 등록금을 대기가 어려웠다. 모든 과목에서 A+를 받아도 장학금을 받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인데 C언어 과목 하나가 내 발목을 잡은 것이었다. 그걸 깨달은 순간 나는 지금 서 있는 곳이 태초 마을이라는 사실을 잊고 말았다. 어떻게든 이곳을 완벽하게 격파해야만 해!


두 번째 시험부터는 교재를 씹어 먹을 듯이 외웠다. 교재의 내용을 공책에 일일이 손으로 다 옮겨 써 가며 외웠다. 귀퉁이에 있는 작은 글씨도 시험에 나올까 전전긍긍하며 머리에 집어넣으려고 애썼다. C언어가 처음도 아닌데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공부했다. 공부하면서 한편으로는 장학금을 놓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꾸만 불안해졌다.


그때처럼 공부하라고 하면 절대 못 한다. 그럴 시간도 없을뿐더러 그때만큼 간절하지도 않으니까. 고향이 김해인 나는 대학 때문에 홀로 서울에 올라왔다. 여기 계속 남으려면 장학금을 받아야만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때의 나에게 돌아가 여기는 아직 스타팅 포인트라는 말을 전해주고 싶을 정도로.


그 간절함이 무엇까지 가능하게 했냐 하면. 


수업 시간에는 에디터를 활용해서 코드를 쓰지만 시험을 칠 때는 종이에 써야 했다. 에디터는 문법 오류를 찾아서 알려주는데 손으로 쓰면 그럴 수 없다. 점수 깎이지 않으려면 문법을 완벽히 숙지해야 한다는 뜻이다. 워드 프로그램에 글을 쓰면 틀린 단어에 빨간 밑줄이 뜨지만 손으로 쓸 때는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나는 교재의 예제 코드를 모두 손으로 썼다. 그리고 그 코드를 에디터에 옮겨서 틀린 곳이 없는지 확인했다. 계속 반복했더니 손으로 아무 문제나 풀어도 틀린 문법이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글을 50페이지 썼는데 틀린 맞춤법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해 보라.


이 미친 짓을 하고 결국 나는 A+를 받았다. 스타팅 포켓몬을 태초 마을에서 진화까지 시키고 말았다. 오랜 시간 함께한 포켓몬에게 정이 들 법도 하겠지만 나는 지긋지긋해서 보기도 싫었다. 그런데도 미워할 수는 없는 건, 간절했던 그 시절의 내가 떠오르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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