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처음 배웠을 때, 내리막길을 만나면 되돌아가곤 했다. 자전거로 내리막길을 달리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으니까. 내게 그런 용기는 없었다. 머릿속에는 넘어져서 구르는 내가 그려졌고 그것이 기정사실인 것만 같았다. 넘어지면 아프겠지. 어쩌면 달리는 차에 부딪혀 크게 다칠지도 몰라. 그러면 다시는... 그럴 바엔 도전하지 않겠어.
내가 목표한 곳에 도달할 수 없을까 봐. 그래서 지레 겁먹고 도망치는 것이라는 걸. 나는 아주 잘 알고 있다. 자전거를 언제나 평지에서만 탈 수 없다는 걸 알았을 때도, 언제까지고 여기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는 걸 알아도, 가능하다면 피하고 싶었던 나였으니까. 그건 비단 자전거뿐만이 아니었다.
고등학생 때 수학을 못했다. 아주 못하지는 않았지만 목표한 대학에 가기는 어려웠다. 외우는 건 잘했지만 응용은 못했으니. 외울 수 있는 문제는 다 외워 보아도 여전히 풀 수 없는 문제가 나왔다. 수학 문제집을 끌어안고 울어도 변하는 건 없었다.
수학을 피해 디자인과로 도망쳤다고 말해도 된다.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니까. 그곳에서 내가 창의적인 인간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가 잘하는 건 배운 걸 그대로 출력하는 일이었다. 직업으로 삼고 돈을 벌 수 있을 만큼 디자인을 잘하지 못했다. 아니, 그럴 것이라고 믿었다. 내리막길 위에서 겁을 먹었다. 그래서 또 도망쳤다.
빠뜨리고 말하지 못한 사실을 하나 전하자면 나는 수학도 디자인도 좋아했다. 정말 좋아했다. 그 마음이 머리끝까지 차오르더니 끝내는 제대로 해내지 못한 자신에게 좌절하고 말았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컸다고나 할까. 결국 나는 도망쳤다. 도망친 자리에서 뒤를 돌아보면 씁쓸한 맛이 났다. 반가움에 후회가 한 숟갈 섞인.
앞선 글에서 몇 번이고 말한 대로 나는 개발자가 되었다. 개발도 좋았다. 역시나 좋아한 높이만큼 마음이 무너졌다. 또다시 내리막길 위에 섰고, 나는 그 위에서 갈팡질팡했다. 내려갈 용기가 있어야 성장한다는 걸 알고 있는데. 발을 떼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왜 몸도 마음도 따라주지 않는지. 왜 실패하는 미래부터 그려지는지.
그래서 또 도망쳤냐고? 이번엔 생계가 걸려있어 도망칠 수 없었다. 이번에야말로 나아가야 할 때지만 겁쟁이인 나는 발을 구르는 게 아니라 눈을 가렸다. 극복해야 할 내리막이 놓여있다는 사실을 잊게 해 줄 ‘딴짓’을 찾아 헤맸다. 잠시 시선을 돌려서 무너진 내 마음을 회복하자.
‘그래, 나는 이런 일도 할 수 있잖아.’
그런 생각으로 스스로를 달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시작된 딴짓.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딴짓의 정의는 ‘어떤 일을 하고 있을 때에 그 일과는 전혀 관계없는 행동을 함. 또는 그런 행동’이라고 한다. 우습게도 개발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개발과 전혀 관계없는 일을 해야 했다.
현실 몰두도 아니고 현실 도피도 아닌, 현실에 살짝 발을 걸쳐둔 채로. 나는 도망칠 수도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내가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 딴짓. 개발을 하면서 나에게 실망을 하고 딴짓을 하면서 안정을 찾았다. 딴짓은 내 마음의 보충재이자 버팀목이었다.
나는 추리 소설도 결말부터 읽는 사람이라 여기서 당장 나의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내리막은 더 이상 내리막이 아니었다. 딴짓을 열심히 하다가 다시 내리막을 찾아가 보았을 때 그 자리에는 오르막이 있었다. 한 발 한 발 내딛기만 하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은.
‘이건 해 볼 만한데?’
도저히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았던 길이 도전할 수 있는 길로 변해있었다. 겁먹은 내게 필요했던 건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정도면 나도 할 수 있겠다’라고 마음먹을 시간. 빨리 해야 한다는 조급함에서 벗어날 시간. 물론 그 시간을 가지기 위해 수많은 딴짓이 필요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