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말이 있다.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없다면 돈이 부족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보라.’ 소확행이라는 단어도 있지 않나. 소소한 돈으로 사는 확실한 행복 (이거 아님). 나의 경우 소확행이라기엔 액수가 크고 대확행을 할 만큼의 돈은 없으니 중확행이라고 하면 적당하겠다.
퇴근하고도 집에 들어가기가 싫어 괜히 집 주변을 떠돌던 날들이 있었다. 그때 살던 집은 아주 오래된 다가구 주택. 곧 벌레와의 동거를 의미했다. 그래 뭐, 벌레는 잡으면 되니까. 넘어가 줄 수 있다. 그렇지만 오래된 집은 벌레가 아니더라도 실망할 거리가 많았다. 도어락이 아니라서 열쇠가 없으면 들어갈 수 없는 대문, 낡은 장판과 문지방에도 나는 충분히 우울해했다. 아무리 치워도 깔끔해지지 않는 집에 지쳐버리기도 했고.
그런 이유로 그날도 집에 들어가지 않고 주변을 걷고 있었다. 나는 마음이 심란해지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데 상대는 주로 가족이었다. 그러니 그날도 어김없이 전화를 걸려고 했다. 상대는 여동생 찌이였다. 전화를 하려고 보니 우리는 그렇게 살가운 자매가 아니었다. 그래서 전화 대신 카톡을 했다.
“뭐야, 얼른 집에 들어가.”
“들어가기 싫어.”
“침대를 사. 집에 가기 싫으면 붙어있을 이유를 만들어.”
그렇군. 그렇구나. 나는 당장 집으로 들어가 침대 매트리스, 침대 프레임, 침대 커버, 침대 패드를 주문했다. 전에는 바닥에 싱글 사이즈 토퍼를 깔고 잤다. 침대는 공간도 차지하고 무엇보다 이사할 때 힘들다는 이유가 컸다. 이사할 때 침대를 어떻게 옮기지? 용달 부르면 된다. 나는 살면서 한 번도 용달을 불러본 적이 없었다. 그런 이유로 괜히 겁부터 나서 침대도 사지 않았던 것이다. 바보 같다고? 바보 맞다. 내가 좀 그렇다. 걱정이 과하게 많은 편이다.
찌이의 말을 듣고는 망설임을 모두 버렸다. 나도 답답했던 모양이다. 일하고 돌아온 집에서도 마음 편히 쉬지 못하는 게. 누군가 그렇게 말해주기를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 주문하고 3일쯤 지났을까. 내 방에는 서랍 3개가 딸린 침대 프레임과 적당히 푹신한 (미디움이라나 뭐라나) 매트리스가 놓이게 되었다. 처음 침대에 누웠을 때 조금 행복이 느껴졌다. 그 집에서 침대 위만 다른 세상인 듯했다. 이거면 집에 돌아올 수 있겠다고도 생각했다. 20만 원짜리 행복이었다.
낡은 집이 기어코 일을 쳤다. 창문 틈에 말벌도 집을 지은 것이다. 이중계약은 너무하지 않습니까? 더 이상 여기서는 살지 못하겠다고 판단해 계약도 끝나기 전에 부랴부랴 이사했다. 새로 이사한 집도 다가구 주택이기는 마찬가지지만 이전 집보다 훨씬 깔끔했다. 세면대도 있고. 다용도실도 있고. 높은 층이라 벌레도 안 나오고. 쾌적했다. 보증금과 월세도 저렴한 편이었다. 이사 최고 만만세!
‘이번 집에선 만족하고 잘 살았습니다.’ 라면 좋았겠지만 또 나는 집에 붙어있질 못했다. 용달로 무사히 침대도 옮겼건만. 이번엔 뭐가 문제냐고? 내 방 한쪽 벽에는 찌이에게서 받은 검은 행거가 바닥에서 천장까지 길게 뻗어있었다. 그마저도 넓게 설치하지 못해 억지로 걸어놓은 옷가지가 터져나갈 듯했다. 콘센트 아래에는 와이파이 공유기에서 뻗어 나온 검은 선들이 어지럽게 엉켜있었다. 검정이 너무 많아. 안 어울려. 우중충해. 그뿐만 아니라 방이 전체적으로 어수선하달까? 수납공간이 부족해서 바닥에 널브러진 물건들. 그걸 볼 때마다 짜증이 났다.
그리하여 회사에서 일하기 싫을 때마다 적극적으로 딴짓을 하기 시작하는데. 공책을 펴 놓고 내 방의 구조를 작게 그려놓고서 가구를 여기에 배치했다가 저기에 배치하기를 반복했다. 틈만 나면 폰으로 가구나 인테리어 소품을 들여다봤다. 아직 어떻게 꾸며야겠다는 계획이 없던 터라 물건을 보고 정하려고. 다른 사람들이 올린 인테리어 사진도 둘러봤다. 특히, 네이비 인테리어. 나는 네이비색을 사랑하니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나는 소확행으로 만족할 수 없는 사람. 내 통장의 돈으로는 행복을 살 수 없었다. 고민 끝에 절대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신용카드를 쓰고 말았다. 이번엔 30만 원 정도? 집 꾸미는 데에 30만 원이면 싸게 친 거지.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래야 한다)
네이비 침대 패드, 네이비 베개 커버, 네이비 커튼, 네이비 카펫, 네이비 책꽂이. 네이비에 미친 사람처럼 네이비를 사들였다. 덕분에 내 방은 파래졌고, 남자친구는 내 방을 ‘초량이의 파란 방’이라고 불렀다. 이것만 샀으면 30만 원이 아니었겠지. 행거도 새로 샀다. 천장에 닿는 긴 행거 말고 스탠드형 행거로. 그것도 4단 선반이 달린. 휴지와 생수를 놓을 2단 선반도 샀다. 재활용 쓰레기 바구니를 놓을 2단 선반도 또 샀다. 한동안 집에 돌아와서 행거와 선반을 조립하는 재미에 빠져 있었다. 물건을 착착 정리해 놓고 깔끔하게 정리된 집을 보면서 행복에 젖었다. 돈이 최고야. 새로워. 짜릿해.
집 꾸미기는 도파민 분출을 위한 일종의 자극이었을지도. 내가 한 모든 딴짓이 그렇겠지만 말이다. 회사에서 나에게 실망하고 지쳐있다가도 내가 만든 파란 방으로 돌아오면 도파민이 솟구치는 걸 느꼈다. 내가 사랑하는 색으로 도배된 방에 몸을 뉘면서 이 집으로 돌아오는 일상이 반복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흔히 말하는 ‘직장인 인생 노잼’ 시기를 이렇게도 버텨내고 있었다. 나는 요즘도 기회만 되면 또 집을 휘리릭 꾸미려고 시동을 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