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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초량 Oct 06. 2023

한번 해 보겠습니다

이것은 내가 개발자이면서 어떤 사정에 의해 UX 디자인 과외를 들을 때 있었던 일이다. 과외 선생님이 개발 고수를 구분하는 방법이라는 뉘앙스로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해주셨다. 디자이너로서 요구 사항을 말했을 때 개발자의 반응은 두 가지라고 한다. 우선 첫 번째,


“이런 사항 때문에 이 부분은 시간이 걸릴 수 있고 이런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요. 어떻게 하실래요?” 


그리고 두 번째,


“그럼요. 다 할 수 있죠.”


누가 더 일을 잘했을까요? 선생님이 내게 질문했다. 당연히 첫 번째였다. 경력 있고 개발을 잘하는 사람은 무작정 ‘할 수 있다’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고.


그 이야기를 듣고 문득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그런 적이 없었나. ‘할 수 있습니다’라고 무턱대고 외친 적은 없었나. 안타깝게도 나는 외부 클라이언트와 미팅을 한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팀 내부에서는 어떻게 했었지?


나는 주로 이런 태도를 취했다. ‘일단 해 볼게요.’ 그건 팀 내부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말이기도 하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외부 미팅 자리에서 ‘일단’, ‘해 보겠다’ 같은 말은 아마도 꺼낼 수 없을 테니까. 해 보겠다고 말한 건 나의 역량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이 업무를 주었을 것이며, 나 역시 그 사실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모르는 일에 대해 ‘할 수 있다’라고 외치기는 어려우니 ‘해 보겠다’라고 말했었다.


“저는 일단 해 보겠다고 말해요.”

“그건 괜찮죠. 노력해 본다는 거잖아요. 문제는 다 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해놓고 나중에 가서 못한다고 하는 거죠.”


그런 일을 많이 당해본 듯 질린 표정으로 선생님은 말했다. 


개발자로 일하게 된 초반에는 무엇이든 무조건 다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설령 지금의 내가 못 할 것 같더라도 할 수 있다고 말해야 한다고.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서 결국엔 해내야만 한다고. 말도 안 되지만 그렇게 생각했다. 만약 끝내 해내지 못했다면? 과외 선생님이 겪었던 일을 내가 만들어 냈을 것이다. 그러면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피해를 줬겠지.


그런 내가 ‘해 볼게요’, ‘해 보고 싶어요’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계기는 바로 안전한 팀의 존재였다. 이곳에서 내가 안전하다는 감각. 그걸 느낀 순간부터 ‘할 수 있다’고 말해야만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났다.


‘못한다고 비난받지 않아. 버려지지 않아.’

‘실수하더라도 같이 해결해 줄 선배가 있어.’

‘내 역량을 알아봐 주는 팀장님이 있어.’


안정감 있는 팀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덕분에 나는 다른 회사로 이직해서도 곧잘 ‘해보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개발자가 되었다. 그 말은 주니어 개발자인 나를 이끌어 새로운 경험과 마주하도록 했다. 때로는 어려움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제가 이 부분 개발하면서 이렇게 시도했는데요. 이런 이슈가 있어요. 같이 봐주실 수 있으실까요?"


라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다. 부딪히고 도움받으며 한 걸음씩 개발자로서 성장했다.


시니어 개발자처럼 요구 사항을 듣자마자 어떤 부분이 이슈가 될지 파악해서 클라이언트에게 알리고 다시 제안하는 것은 주니어 개발자에겐 아직 어려운 일이다. 겪어보지 못한 것이 많기에. 당연히 모르는 부분이 많으니까. 그러니 못 한다고 위축되지도 말고, 해야 한다고 긴장하지도 말고 말해 보자. ‘한번 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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