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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초량 Oct 10. 2023

작업 예상 시간은 맞는 날이 없어

듣기 싫은 말이 있다. 아니, 듣기에 두려운 말이 있다. 


“이거 언제까지 할 수 있어요?”


작업 시간을 예상하라는 요구. 나는 불량한 개발자라서 속으로 생각한다. 그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당장 내 앞날도 모르는데? 물론 입 밖으로 내어서 인간관계를 파탄 내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확인해 봐야겠지만 지금 파악하기로는 이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하기까지 2년 걸렸다. 2년 일했더니 그나마 작업해 본 업무가 생겨서. 경험을 바탕으로 예상 시간을 어림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마저도 느낌적인 느낌에 불과할 때가 많지만 말이다. 그래도 신입일 때보다는 나은 편이다.


인턴 시절, 대표님이 항상 내게 물었다. 언제까지 할 수 있냐고. 당시의 나는 대부분의 업무가 처음 접하는 작업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는 고사하고 내가 할 수 있는지도 장담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언제까지 하라고 정해줬으면 좋겠는데. 왜 자꾸 나보고 작업 시간을 예상하라는 거야? 


그야 대표님은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아직 모르니까. 같은 작업이라도 저 직원은 반나절이면 하는데 나는 하루가 걸릴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물어봤겠지. 이제는 이해한다. 하지만 실무를 처음 경험하는 사람에게 작업 시간 예상은 실력 너머의 일이었다.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거리면 대표님이 일정을 정해줄 때도 있었다. 그러지 않고 계속 대답을 기다리면 그냥 3일이라고 말했다. 근거는 없었다. 나도 나를 모르는걸. 그러면 ‘네? 그렇게 오래 걸린다고요? 하루 만에 끝내세요.’라고 하실 때도 있었다.


개발자 커뮤니티에 가면 이런 질문을 많이 볼 수 있다. ‘개발 일정 예상 어떻게 하시나요?’, ‘작업 시간 예측을 정확하게 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시니어 개발자들이 이런저런 답변을 달아준다. 공통된 답변은 ‘정확한 예측’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 작업 예상 시간이 맞는 날? 그런 건 없다. 단지 예측과 실행 결과 사이의 오차를 줄이는 일이 있을 뿐.


나는 작업 시간 예상을 정말 못 한다. 시간이 남는 경우는 없고 항상 모자란다. 거의 다 되었는데 예상 시간보다는 조금 더 걸리는 상황이 늘 일어난다. 원인은 알고 있다. 예상치 못한 변수에 부딪혀 빈틈없이 짜 놓은 계획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다.


‘해야 할 일을 이렇게 쪼개자. 그런 다음 화요일, 수요일은 이것 작업하고 목요일에는 저것 작업한 다음에 퇴근 전에 깃허브에 올려놓으면 되겠다. 시간 충분하겠지.’


그러면 화요일에 문제가 생긴다. 어? 이거 1시간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이렇게 하면 안 되는구나? 머리를 스치는 불길한 기운. 망했다.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다시 두드린다. 방법 찾고, 시도해 보고, 제대로 되는지 확인하고. 시간 얼마나 걸리지? 오늘 안에 끝낼 수 있나?


계획이 하나씩 밀린다. 왜 바보같이 시간을 더 여유 있게 잡지 않았을까! 아니, 여유 있게 잡는다고 잡았는데도 계획이 밀린다. 명백한 예측 실패. 그래도 내가 정한 시간을 맞추기 위해 일에 집중한다. 쫓기는 기분으로 작업하다 보면 아슬아슬하게 데드라인을 맞추거나 조금 밀린다. 가끔은 전혀 맞출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면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고 말하는 수밖에.


나는 언제쯤 예상 시간보다 일찍 끝내는 개발자가 될 수 있을까? 무조건 일찍 끝낸다고 좋은 것은 아니지만 한 번쯤은 해 보고 싶다. 그러면 마치 게임에서 점수를 더 따는 기분이 들 것 같아서. 느낌으로 하는 막무가내 예측이 아니라 경험과 자료를 기반으로 언제나 오차가 가장 적은 예측을 하고 싶다. 2년 차 개발자가 꾸기엔 너무 큰 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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