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중증 강박과 우울이 있다.
치료를 받기 시작한 것은 대학 졸업을 앞둔 시점이었지만
증상 자체는 초등학생 때부터 있었던 것 같다.
강박과 우울.
이 질병을 가진 사람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많을까.
나의 강박은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병이었다.
이만큼도 하지 못해? 그러면 너는 살 가치가 없어.
이런 것도 못하다니 너는 쓸모없는 인간이야.
왜 살아? 없느니만 못 한 것.
다른 사람이 한 말이 아니다.
내가 나 자신에게 한 말이다.
나는 내게 가장 혹독하고 엄격했다.
학생일 때는 주로 성적을 잘 받아야 한다는 압박이었다.
성적을 잘 받아야 해.
잘 해내야 해.
그래야 쓸모 있는 인간이 될 수 있어.
그래야 버림받지 않을 거야.
그러면 사랑받을 수 있어.
내 성적이 떨어진다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미워할 것도 아닌데
나 혼자 그런 생각에 빠져있었다.
해내지 못하면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며.
상처받은 자신을 다독이지도 못한 채.
그렇게 채찍질해서 내가 대단한 인간이라도 되었으면 좋았겠지만
나는 그리 대단치 않은 사람이 되었다.
그저 그런, 그냥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20대.
입시가 모두 끝나고 나서는
잊어버리려고 했다.
자신에게 혹독했던 나도, 그 기준치에 도달하지 못하던 나도
다 싫었다.
회사에 들어가고 일을 하면서도 강박은 여전했지만
치료를 오래 받아서인지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몇 알의 약을 장기 복용하는 것은 효과가 있었다.
나를 조금씩 바꿔놓았으니.
그리고 지금에 와서야 나는
설령 펑펑 눈물을 쏟을지라도
홀로 두려움에 떨며,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는
어린 나를 안아 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