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이키 카후나의 난임일기
“우리 비행기는 곧 호놀룰루 공항에 착륙하겠습니다. 좌석 벨트를 매주십시오. 감사합니다.” 기내 방송으로 착륙 안내 멘트가 흘러나왔다.
몸은 분명 이름마저 경쾌한 호놀룰루 상공인데, 마음은 서울에 있는 난임 병원에 묶여있었다. 휴가를 왔으면 신나게 놀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건 모르겠고 내 신경은 온통 가방 안에 쏠려있었다. 일명 ‘난소 쉬는 약’ 봉지를 만지며 이 약을 한국 아침 시간에 어떻게 챙겨 먹을까만 궁리했다.
공항에 도착하고 여전히 칙칙한 마음으로 짐 찾는 곳으로 걸어가다가 고개를 들어 창밖 풍경을 봤다. ‘어라, 이 기분 오랜만이다!’ 처음 가보는 도시에 갔을 때, 안 해봤던 것을 시도했을 때 느껴지는 설레는 감정. 내 세계가 넓어지는 그 기분 말이다. 그때 알게 되었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다른 건 다 제치고 오로지 난임만 보고 살았는지. 그게 내 세계를 얼마나 쪼그라들게 했는지.
이번 여행은 즉흥적으로 결정했다. 나 말고 남편을 위해 한번 가보자고 생각했다. 그때 나는 7번째 채취, 4번째 이식까지 모두 실패하고 이식할 수 있는 배아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 (경제적 문제 포함해서) 하와이까지 휴가를 가는 건 내가 사는 방식이 아니었다. 그래도 감행했다. 그의 우울한 얼굴을 매일 보는 것도 질려버렸으니까.
쓰린 속을 부여 잡고 적금을 깼다. ‘코시국이라 신혼여행을 안 갔었잖아’라고 합리화할 이유도 충분했다. 비행기표만 예매했는데도 남편이 씩 하고 웃는 걸 봤다. 아이고 우리 남편 저렇게 철이 없을까,라고 생각했다가, 난임 생활 전에나 볼 수 있었던 밝은 얼굴을 보니, 나도 이내 덩달아 씩 웃어 버렸다.
여행 중 남편은 매일 아침 웃으며 일어났다. 세수도 안 하고 바로 바다로 뛰어들었다. 배고프면 무스비와 맥주로 점심을 대충 때우고, 5달러짜리 스노클링 장비를 챙겨 다시 해변으로 갔다. 그곳에서 우리는 하늘보다 바닷속을 더 오래 봤다. 이 정도면 아는 물고기가, 아는 거북이가 생기는 거 아니냐고 농담을 주고받았다.
간식을 사러 편의점에 걸어가다가 불현듯 하와이에 여행 온 진짜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하와이를 구경하러 온 게 아니었다. 남편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러 온 것이었다. 이제는 귀해져 버린, 서울에서는 못 보는 남편의 웃는 얼굴. 사랑하는 사람이 기뻐하는 그 모습을 보려면 태평양 한가운데까지 와야 하는구나, 반성이 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하와이 날씨는 그야말로 파라다이스. 한국 초여름 저녁에 부는 시원한 바람이 종일 불었다. 긴장을 풀고 해변에 앉아 파도와 야자수, 수평선을 번갈아 보다가, 갑자기 억울해졌다. 세상은 이토록 반짝거리는 곳인데, 나만 혼자 방에 틀어박혀 울고 있었구나. 나만 이렇게 다 놓치고 살고 있었어? 스스로 만든 우울함에 빠져 인생에 중요한 것을 다 놓치고 사는 것 같았다. 어찌나 원통하던지 더 열심히 놀자고, 더 열렬하게 세상을 구경하자고 다짐했다.
여행 일주일 내내 이 악물고 제대로 놀아보겠다는 마음으로 지내니 난임 생활에 대해 걱정할 시간이 없었다. 게다가 지금 이게 어떤 시간을 쪼개서, 어떤 적금을 깨서 온 여행인데, 하며 시간표를 더 빡빡하게 짰다. 정신없이 세상을 구경하니 걱정할 시간도 고민할 여력도 없었다. 이것만으로도 정화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관성에서 벗어나는 시간, 난임 생활에도 필요하다는 걸 배웠다.
한수희 작가님이 「여행이라는 참 이상한 일」이란 책에서 자신은 여행이 끝날 때마다 같은 사람인 채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온다고 했는데, 나 역시 분명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삶에 대한 입맛이 다시 생겼다. 가기 전에는 내 인생에 더 이상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 인생에 과연 기대할 것이 있을까,라고 생각하며 입을 삐쭉거리다 자주 눈물이 고였다. 분명 임신만 실패인 것인데, 인생이 실패한 기분이었다.
그 말도 안 되는 비이성적인 마음을 태평양 한 가운데 두고 왔다. 임신 성공에만 집착하는 대신 지금 내 인생에서 무얼 놓치고 살고 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돌아보니, 인생에서 꼭 휴가가 필요한 상황이 있었다면 바로 그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