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이키 난임 커뷰 - 설국의 난임일기
여보, 오빠, 그리고 잠시였지만 율이와 담이 아빠,
이 모든 이름으로 내 곁에 있는 당신에게 오늘은 편지를 써보려고 해.
우리 함께한 시간만큼 쌓인 이야기가 참 많지. 벌써 결혼한 지도 19년이 되었다니, 시간 참 빠르다. 그중 6년은 우리가 함께 아기를 기다리며 보내던 소중한 순간들이었고.
그 기간 동안, 여보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어색하지만 궁금해서 묻지 않을 수 없었어. 당신은 “우리 와이프가 고생했어”라고 대답했지. 짧은 한마디지만, 담긴 시간과 무게를 알아서인지 마음 한 구석이 뜨거워지면서 눈물이 핑 돌더라.
내가 또 이어서 물었지, 언제가 가장 힘들었느냐고.
나는 PGT를 통과한 배아로 임신한 아이를 보냈던 날이 아닐까 예상했지만, 여보는 두 번째 병원에서 마지막 진료를 받던 날이라고 대답했어. 그날을 떠올리면 지금도 괴롭다고. 집에서 걸어서 10분이면 갈 수 있는 가까운 병원에서 8번이나 채취를 하고도 임신이 되지 않아서 우리 '삼신할매'라고 불리는 유명한 곳을 찾았잖아. 기대감을 안고 왕복 4시간을 투자하면서까지 희망을 걸었지만, 그 병원도 선택지가 되지 않았을 때, 당신은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심장이 ‘쿵’ 하고 바닥에 떨어진 것처럼 깊은 상처를 받았다고 했어. 언제까지 더 해야 할지, 어디까지 가야 할지 모르는,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 서 있는 기분이 들어 겁이 났다고. 그런데도 특별히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어서, 그 마음이 나에게 짐이 될까 봐 표현할 수 없었다고 이제야 말해줬지.
여태 몰랐던 당신의 이야기. 한편으로 놀랐고, 또 한편으로는 고마웠어. 항상 웃는 얼굴로 ‘괜찮다’고 ‘다음 번엔 잘 될 거야’라고 나를 안심시켜 주던 당신이 사실은 속으로 수없이 무너지고 있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기도 해. 어떻게 그렇게까지 긍정적일 수 있는지 신기했는데, 당신에게도, 혼자 삼켜야 했던 시간이 있었구나. 우리는 서로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야 했기에,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한 거였구나.
근데 말야,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서로를 향한 이해와 존중이 더 깊어졌다고 느끼는 건 왜일까?
여보가 나와 함께 단념하지 않고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매일 감동받아. 함께 보낸 수많은 진료의 시간들, 고요한 병원 복도에서 마주친 절망의 눈빛, 그리고 ‘이번엔 다를 거야’라고 밝게 웃던 표정들. 우리는 몰랐던 서로의 단단한 면과 때로는 연약한 모습을 매번 새롭게 발견하고 있어. 이 기다림은 단지 아이만을 위한 여정이 아니었나 봐. 우리가 ‘진짜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이었나 봐. 온전히 둘만의 삶을 계획했을 때보다 더 단단해진 우리,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된 우리가 되었네.
앞으로도 우리, 서로를 더 많이 알아가고, 가까워질 거라고 믿어. 기다림의 끝에 어떤 삶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확실한 건 그 삶 속 언제나 ‘함께인 우리’가 있을 거란 걸 알아. 그러니 편지의 끝인사는 아직 하지 않을래. 우리 이야기는 내내 이어질 테니까. 우리의 다음이 한껏 궁금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