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이키 난임 커뮤 - 설국의 난임일기
내가 아니고서 나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난임이라는 길고 복잡한 여정을 지나오며 뼛속 깊이 체감하게 된 진실이다. 난임, 단어 하나로는 담을 수 없는 수많은 감정, 과정, 실패, 기대, 그리고 포기를 오가는 마음은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결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나는 그 외로움 속에서도 의지할 수 있는 작은 안식처를 찾았다. PGT(배아 유전자 검사)를 진행하는 사람들이 모인 오픈채팅방이었다.
그곳은 그저 정보를 나누는 공간이 아니었다. 대부분이 착상 실패나 유산을 여러 번 겪은 끝에 PGT라는 선택지에 이르렀고, 그 공통의 경험이 자연스레 우리를 하나의 공동체처럼 엮어주었다. 병원마다 다른 프로토콜, 각기 다른 치료 이력, 매번 다르게 나오는 호르몬 수치들 사이에서도 우리는 서로를 이해했고, 서로를 응원했다. “난자질이 별로래요”, “이번에도 불통이에요(*불통: PGT검사에 통과하지 못함)”라는 말이 익숙한 이들끼리 건넬 수 있는 진심 어린 위로는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따뜻한 연대감이 흔들리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했다. 나 역시 부끄럽게도 파문을 일으킨 적이 있다. 첫 번째 난임병원을 다니는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5일 배양 배아를 얻지 못했다. 난자 채취는 매번 10개 내외로 비교적 숫자가 적지 않았지만, 수정률은 절반 수준이었다. 신선이식을 앞두고 남는 배아는 3일 배양 배아 2~3개가 전부였고, 그마저도 분열이 멈춰버리거나 폐기 판정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배양 2일째 분열이 멈춰버린 배아로 첫 임신을 했고, 기적처럼 느껴졌던 그 임신은 아쉽게도 유산으로 끝났다.)
그런 나였기에 두 번째 병원에서 처음으로 5일 배양에 성공해 여러 개의 배아가 동결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말 그대로 감격스러웠다. 오랫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희망의 빛이 목전에 다가온 것만 같았다. 그 기쁨에 취해 나는 병원 어플에 올라온 채취 결과 화면을 캡처해 PGT 오픈채팅방에 공유하고 말았다. ‘여러분의 추천으로 전원한 병원에서 드디어 5일 배양 배아가 나왔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떠들어댔다. 아, 멈췄어야 했다. 좋든 나쁘든 감정에 휩싸이면 주변에 대한 시야가 흐려지나 보다. 기쁨을 나누고 싶었던 나의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었을 터. 그곳에는 "이번에도 난포가 보이지 않는다"며 좌절하는 사람이 있었고, "배아 등급이 떨어져 검사조차 보내지 못했다"며 슬픔에 잠긴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을, 그 감정을, 잠시 잊었다. 뒤늦게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닫고 급히 사진을 삭제하고 사과했지만, 그 중 누군가에게 남긴 상처가 쉽게 사라졌을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속도와 형태, 느끼는 감정은 모두 다르다. 누군가에겐 한 걸음 내디딘 것도 기적이고, 누군가에겐 그 한 걸음이 너무나도 멀다. 그렇기에 더 조심스러워야 했고, 더 배려했어야 했다.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 해도, 연대감 안에 안일하게 기대기보다는 서로의 상처가 덧나지 않도록 주의했어야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경험을 공유한다고 해서 언제나 더 다정하고 이해심이 많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안에서 누군가는 자신의 기준과 방식을 ‘조언’이라는 이름으로 강요하기도 한다. 어떤 영양제를 먹어야 한다, 병원을 바꿔야 한다, 특정 검사를 해야 한다는 말들이 때로는 정보가 아닌 압박으로 다가온다. 선의를 바탕으로 한 말이라도, 정작 당사자에게는 부담으로 혹은 불안을 부추길 수도 있다는 점을 스스로에게 수시로 상기해야 한다.
비슷한 상황 속에서도 서로의 간격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은 한 번의 유산에도 무너지고, 어떤 사람은 열 번의 실패를 겪고도 다시 일어난다. 누구도 누구의 회복 속도를 재단할 수 없고, 다른 이의 감정을 과하거나 부족하다고 말할 자격도 없다. 같은 이름의 아픔을 겪고 있다고 해서 같은 방식으로 느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시간을 지나며 나는 진짜 연대는 공감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느낀다. 진정한 연대는 이해하려는 노력과 끝없는 배려,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에 대한 존중 위에 서 있어야 한다. 서로에게 더 다정해야 한다. 특히 난임이라는 무거운 시간을 함께 견디는 사이일수록 말이다.
결국 우리는 모두 ‘가능성’ 하나를 붙잡고 그날을 향해 나아간다. 그 가능성은 때때로 좌절이라는 얼굴로 우리를 시험하지만, 우리는 결국 스스로를 추슬러 다음을 준비한다. 반복되는 여정 속에서, 나와 같은 길을 걷는 이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의 과정은 당신만의 것이라는 걸 잊지 않기를. 그 고유한 시간을 살아내는 당신이 참 고맙고, 대단하고, 무엇보다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길. 서로를 향한 조심스러운 시선, 배려 어린 말 한마디, 아주 작지만 따뜻한 응원이야말로 이 길을 걸으며 끝내 내 아이를 만나는 행복한 목적지로 다다르게 해주는 힘이 되어준다는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