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인생은 퉁치는 맛으로

나는 여기 너는 거기 앉아 마주 볼 수 있게 된다

by 시간나무

너로 하여 눈물이 흘러도

너로 하여 눈웃음을 띠웠던 때를 떠올리며

그 순간 눈물이 바람처럼 날린다.


너로 하여 노여움이 일어나도

너의 농으로 너털웃음을 터뜨렸던 때를 떠올리며

그 순간 노여움이 안개처럼 걷힌다.




2017년 9월 19일 서랍 속 이야기를 꺼내면서,

나는 인생의 수많은 맛 중에 퉁치는 맛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하고 느낀다.


<퉁치다>의 어학사전적 의미는 줄 것과 받을 것을 서로 없는 것으로 치다로

내가 추구하는 것과 꼭 맞아떨어진다.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상대방과 주고받을 것이 있을 때, 그와 동일한 가치를 가지는 물건 또는 행동 등을 주고받는 것으로 대신하는 것을 ″퉁친다″라고 말해 왔다. 특히, 행동에 더 가치를 두는 편이다.


"우리, 퉁치자."라고 가장 많이 주고받는 대상은 단연 남편이다.

이 한 문장으로

순간순간 이성과는 다르게 꿈틀거리는 서운함과 옹졸함, 그리고 미움 등의 감정들이

상대방과 연결고리가 되어 거친 벽을 쌓게 되는 찰나를 방치하지 않고 사그라지게 하곤 한다.

나는 이 맛을 좋아한다. 나에게 퉁치는 맛은 관계회복의 맛이다.

순간의 거친 벽을 허물어뜨릴 수 있는, 그러므로 평온을 유지하고 지켜낼 수 있는 이 맛이 너무 좋다.

그때 미워하며 뒤돌아서지 않고, 나는 여기 너는 거기 앉아 마주 볼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 나의 '퉁치자' 제의에 흔쾌히 맞장구쳐주는 남편이 고맙다.

(나만의 퉁치는 맛을 남편도 느꼈나? 언제부터인가 남편이 '퉁치자'의 제의를 하는 횟수가 늘어가고 있다)


인생은 퉁치는 맛으로 사는 것 같다.

나는 그렇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슬픔의 손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