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눈물이 눈물을 닦아주는

by 시간나무

내 신체의 생식기관 일부와

오늘 영원한 이별을 한다.


청년이었을 때 건강이 영원할 줄 알고

아끼지 못하고 보살피지 못하다가,

중년이 되면서 건강하지 못한 신호를 받고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치료하면 호전되었는데,

이제는 치료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상태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래도 기계보다 인간의 사용기한이 훨씬 긴 것 같다.

기계를 50년 넘게 60년 가까이 사용했다면 아마도......


입원 직전

그동안 나를 위해 애써준

나의 생식기관에 감사를 전한다.


고마웠어!

나의 생식기야!

다음 생에서 다시 만나자!

다시 한번 고마워!




2023년 2월 16일 (오전 9시) 서랍 속 이야기를 꺼내면서,

입원 직전 병원 대기실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다시 본다.


'의사와 변호사는 나라에서 내놓은 도둑놈이라'라는 속담이 있다.

이는 의사와 변호사는 국가의 허가를 얻어 개업하고 있지만, 도에 지나친 엄청난 보수를 요구하는 사람이 있음을 비꼬아 이르는 말이다.

의사란 일정한 자격을 가지고 병을 고치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인데 병을 고치는 것보다 다른 것에 더 눈을 돌리는 사람을 두고 한 것이겠지.


그러나 이런 속담이 무색할 만큼 양심을 바탕으로 환자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하는 의사로서의 사명에 헌신적인 진정한 의사도 있다.

다만 내가 환자로서 그런 의사를 만날 확률이 너무나도 희박하기 때문에 사는 동안 한 번도 만나지 못한다면 나에게는 0%이지만, 단 한 번만이라도 만난다면 나에게는 100%인 것이다.


2년 전 2월 13일.

나의 급박한 증상을 무시하지 않으시고, 휴진날임에도 불구하고 수술을 해 주신다 약속하셨다.

세상에 이런 의사가 있었다고? 어느 의사에게서 가능한 일인가?

그날 나는 감사함의 눈물이 통증의 눈물을 닦아주는 날이었다.

(마치 감사함이라는 손수건이 두려움에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는 낯선 경험을 한 것이다)

수십 년 0%의 결과지를 들고 병원을 다녔는데, 순식간에 100%의 결과지를 손에 쥐는 날이었다.


그리고, 2년 전 2월 16일.

나와의 약속을 지켜주셨던 의사 선생님을 다시 떠올리며

그때 그 의사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하는 아찔한 생각에......


수년 전 '낭만닥터 김사부'라는 드라마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나에게도 일어난 것이다.

이래서 인생은 한 편의 드라마이고, 난 그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나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인생은 퉁치는 맛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