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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손톱

by 시간나무

손톱을 깎는다.

열 손가락 모두 정성껏 깎는다.


깎여진 반달 모양 손톱을 버린다.

내 오늘의 슬픔도 같이 버린다.


이제 웃을 일만 있을 것 같아 신이 난다.


어, 그런데 한 손가락 손톱이 그대로 있네?

분명 엄지부터 한 손가락 한 손가락 순서대로 깎았는데 중지를 건너뛰었다고?


허허, 그래서 마음 한편이 아렸나!


오늘 하루 살뜰히 살아낸 것 같아도

시간기차에 오른 후 오늘이 어제로 지나가는 순간

아쉬움과 후회감이 밀려오는 건

슬픔의 손톱이 깎이지 않아서인가!




'손톱은 슬플 때마다 돋고, 발톱은 기쁠 때마다 돋는다'는 말.

아주 오래전 이 말을 들은 후부터 손톱을 깎을 때마다 은근히 속웃음을 웃었다.

'세상아! 나 오늘 손톱 깎는다. 하하!'

손톱을 깎는 것만으로도 며칠 쌓인 슬픔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아! 지금 갑자기 든 생각.. 내가 그래서 손톱 깎는 것을 좋아하나? 너무 바짝 깎아 쓰라린 손끝에 반창고를 붙이는 때가 종종 있다)

반면, 발톱을 깎을 때가 되면 마치 기쁨을 뺏기는 듯해 싫었고, 왜 발톱은 잘 돋지 않을까?

역시 슬픔은 토끼처럼 날쌔게 달려오고, 기쁨은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기어 오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한다.


어찌 되었든, 나는 손톱을 발톱을 깎을 때마다 극과 극의 감정이 뒤엉킨 실타래처럼 굴러다닌다.

그때마다 '손톱은 기쁠 때마다 돋고, 발톱은 슬플 때마다 돋는다'라고 바뀌었으면 좋겠다. 그럼 슬픔보다 기쁨이 더 많은 세상이 될 수 있을 텐데 하며 혼잣말을 한다.




좋은 일은 도와주고 궂은일은 말리라는 말로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랬다'라는 속담이 있다.

'옛말 그른데 없다' 하지만, 그 옛말이 무색하게 최근 언론의 보도를 접하다 보면 싸움은 붙이고 흥정은 말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나의 손톱은 또 돋는다.


(사진 출처 : Woodj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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