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출근길에는 추웠는데 반나절 사이게 기온차가 이리 크게 나다니,
오늘 아침과 오늘 오후가 같은 날 맞나?
오늘 아침처럼 이렇게 추운 날이면 그날이 생각난다.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최소 8년은 훨씬 넘은 겨울의 어느 한 날이었다.
출근을 하기 위해 환승을 해야 하는데, 그날따라 환승 시간대가 잘 맞지 않았다. 고민하다 더 빠를 것 같은 다른 경로를 선택하여 이동하던 중이었다.
이른 아침인데 어디로 가시는지 모르겠지만 시장에 팔 물건처럼 보이는 것들을 작은 수레에 싣고 걸어가고 계셨다. 근처에 시장이 있다 하여도 시장이 열리려면 한참 있어야 할 것 같은 시간대였는데, 할머니는 수레를 끌고 걸어가고 계셨다.
그런데, 아! 지금도 그 순간의 장면을 떠올리면 눈물이 난다.
키도 작으신데 등까지 굽어 더 왜소하게 느껴진 체구였는데, 무엇보다 내 시선이 멈춘 곳은 수레를 잡은 할머니의 손이었다.
할머니는 겨울 장갑 하나 가질 수 없는 형편이셨는지, 시린 손에 낀 것은 장갑이 아닌 양말이었다. 양말 끝을 잘라 손에 끼우시고 손가락 끝만 나오게 손에 끼우신 것이었다.
순간 내 손을 보았다. 답답하여 평소에는 끼지 않던 장갑이었지만 그날은 추위에 시린 내 손을 보호하여 따뜻하게 해 주는 장갑을 끼고 출근하는 중이었다. 그만큼 추웠던 날이었다.
출근길이라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순간 머리의 나와 마음의 내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서로 얽히어 갈피를 잡지 못하였다.
'나는 출근만 하면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사무실에서 일하잖아. 그런데 할머니는 실외에서 하루종일 계셔야 하는데 어서 장갑을 벗어 드려.'
'아니야. 나도 지금 장갑을 벗으면 당장 손이 시린데, 나도 춥단 말이야.'
'그러지 마, 지금 장갑을 벗어드리지 않으면 넌 두고두고 후회할 수 있어.'
'싫어. 나도 추위를 얼마나 많이 타는데. 나도 소중하지 않아?'
결국 나는 머리가 시키는 대로 할머니 손보다 내 손을 위한 선택을 하였고 그대로 출근을 하였다. 물론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편할 수가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게 그해 겨울이 지나갔다. 그런데 그대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마음의 내가 말했듯이 나는 후회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듬해 겨울이 되자 그 할머니가 생각났다.
환승 시간대가 맞지 않은 것도 아닌데 구태여 그 길로 출근을 수 차례 하였다.
그 할머니를 만나기 위하여, 그 할머니를 한 번만 꼭 만나길 바라면서. 이번에 다시 만나면 장갑을 드리기 위해 끼지 않는 장갑을 가방에 매일 넣고 다녔다.
그런데 끝내 그 할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 그때 그 순간을 생각하면 아직도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럽다.
그해 겨울의 후회에 이듬해의 한스러움까지 더해져 자책을 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때 다짐한 것이 어떤 상황에서 내 안에 또다시 두 사람이 나타난다면, 나는 마음의 나에게 손을 들어주기로 하였다.
작년 여름 개인사정으로 반차를 내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버스 안에서 어떤 어르신과 나란히 앉게 되었다. 그분은 무더운 날씨 탓에 버스에서 틀어주는 에어컨으로는 시원함을 느끼지 못하셨는지 바람이 일지도 않을 것 같은 종이로 부채질을 하셨다. 순간 내 가방에 있는 부채가 생각났다.
"혹시, 이 부채 사용하시겠어요?"
"고마워요. 갱년기가 지난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더운지 모르겠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이 부채 사용하셔도 돼요."
"정말요? 이렇게 고마울 때가. 잘 쓸게요."
나는 가진 것이 많지 않은 사람이다. 그러나 내가 가진 적은 것 중에라도 누군가 필요한 것이 있다면 줄 수 있는 아주 작은 마음을 그 할머니로 하여금 얻게 되었다.
가르침을 주신 그 할머니께는 정작 아무것도 드리지 못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