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는 기쁨, 찬성, 환영을 나타내거나 장단을 맞추려고 두 손뼉을 마주치는 것이라고 어학사전에서 풀이한다.
일상 가운데 우리는 "박수 칠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 말에는 살아가면서 박수를 칠 만큼 기쁜 일이 많지 않다는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러던 중, 박수는 기쁨의 표현이나 장단의 맞춤을 위한 수단만이 아니라, 혈액순환을 돕는다는 이유로 건강을 위한 습관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나 역시 몸에 좋다 하니 운동삼아 박수를 치곤 한다.
또한 음악 프로그램을 즐겨보는 나는, 노래를 통해 감동이 전해지는 순간에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박수를 치기도 한다.
이처럼 자신에게 좋은 일(기쁨, 찬성, 환영, 건강 등)에 대한 긍정적인 이유로 치는 박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평범한 박수'라 부른다.
여기에 하나의 정의를 더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바로 '비범한 박수'라는 풀이로 이것 역시 어학사전에 자리를 잡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수(1) : 기쁨, 찬성, 환영을 나타내거나 장단을 맞추려고 두 손뼉을 마주치는 것으로 이는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한 박수'이다.
박수(2) : 박수(1)의 의미에 더하여, 슬픔, 반대, 환송과 함께 실망, 절망 등 나의 뜻대로 되지 않는 수많은 처지와 상황 속에서도 자신이 자신에게 기운을 북돋우고, 자신감을 불어넣으며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마음과 정신이 함께 손뼉을 치는 것으로 이는 누구나 할 수 있으나 아무나 할 수 없는 '비범한 박수'이다.
나는 이것을 <고수의 박수>라 부른다.
<고수의 박수>는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것도 아니고, 어떤 사정이나 형편에 의하여 자신의 삶에 대한 좌절을 느낄 때,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 자신을 위해 치는 박수이다.
"괜찮아"하며 자신의 손을 잡아주는 말,
"잘할 수 있어"라고 자신을 스스로 안아주는 말,
"잘하고 있어"하고 자신의 마음을 위로하는 말.
이 말말말과 함께 스스로에게 보내는 침묵 속의 박수는 조용하지만 때로는 군중의 우렁찬 박수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고 나는 믿는다.
살아보니, 웃는 순간뿐만 아니라 울 수밖에 없는 순간에도 자신에게 박수를 칠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삶의 고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잘 생각해 보자.
어쩌면 우리는 '평범한 박수'보다 '비범한 박수'를 더 많이 치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인생이란 것이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미 <고수의 박수>를 칠 줄 아는 사람들이 아닌가!
은결(銀결)의 아름다움에서 고요함을 느낄 수 있음은 달빛이 비쳐주기 때문이고,
윤슬의 아름다움에서 황홀함을 즐길 수 있음은 햇빛이 비춰주기 때문이다.
밤의 달빛과 낮의 햇빛, 어둠 속의 빛도 밝음 속의 빛도 그 역할이 모두 있는 것처럼
기쁘고 좋은 일에 축하의 박수가 있듯이,
슬프고 고된 일에도 응원의 박수가 반드시 필요한 법이다.
물론 기쁠 때는 두 손이 마치 자석처럼 서로를 끌어당겨 자연스레 마주쳐 소리를 내기 쉽지만,
슬플 때는 두 손이 마치 물과 기름처럼 서로 밀어내어, 멀어지는 두 손을 억지로 끌어당겨 마주쳐 소리를 내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기쁠 때의 박수는 의지가 약해도 소리가 나지만,
슬플 때의 박수는 의지가 강해도 소리를 내기 어려운 법이다.
그래서일까?
삶과 의지가 서로 어긋나 마치 물과 기름처럼 서로 밀어내고 있는 순간에도,
두 손을 쭉 늘어뜨리지 않고, 있는 힘껏 끌어올려, 두 손을 마주 보게 잡아당기고, 두 손뼉을 맞춰 소리 낸 박수야말로 <고수의 박수>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슬픔 속에서 떨리는 박수는 기쁨 속에서 터져 나오는 박수보다 소리가 크지 않을지라도, 그 속에는 상상할 수 없는 큰 버팀과 견딤, 그리고 순수한 응원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신념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때그때 최선을 다해 살아왔음에도, 되돌아보면 후회는 끝이 없다.
어제는 지난 간 오늘이고, 내일은 오지 않은 오늘이다.
내가 살 수 있고, 내가 살아내야 하는 시간은 오늘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어제도 분명 오늘처럼 있는 힘을 다해 살고 보냈는데,
왜 어제가 되어버리는 순간, 모든 것이 후회로 변하는 걸까?
그때 내가 조금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그때 내가 조금 더 이해해 주었더라면
그때 내가 조금 더 믿어 주었더라면
그때 내가 조금 더 기다려 주었더라면
그때 내가 조금 더 사랑해 주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조금 덜 후회하며 조금 덜 무너졌을까?
그렇게 수많은 ‘그때’들이 쌓여 지금의 내가 되어
그때의 너에게 필요했던 관심, 이해, 믿음, 인내, 그리고 사랑의 말들이
이제야 나에게 도착해 너를 지켜주지 못한 애통함을 말로 다 할 수 없다.
지금 나는 너의 상처를 내 안에서 찾으며, 너에 대한 사랑을 되짚고 있다.
마음도 정신도 다잡는다.
다시 일어서기 위해 내게 변명을 늘어놓는 염치를 방패로 삼아 본다.
혹시, 그때 내가 더 많이 관심을 가졌다면,
그때 내가 더 많이 이해하고, 그때 내가 더 많이 믿고,
그때 내가 더 많이 기다리고, 그때 내가 더 많이 사랑했다면
어쩌면 지금 나는 너의 상처를 네 안에서 찾으라며, 너에 대한 사랑을 다했다며 내 교만을 세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예고도 없이 날아온 화살을 피할 길 없어 맞고 보니
그때의 부족한 나로 하여금 지금의 내가 힘을 낼 수 있게 한다. 내 탓이니까, 내가 어떻게라도 헤쳐 나가야 하니까.
그래서 나는 너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나를 먼저 일으켜 세우려 한다.
그래서 정말 미안하지만, 너를 위해 내게 변명을 건네며 나부터 달랜다.
내가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있어야, 너도 일어설 때 손을 내밀어 잡아줄 수 있으니까.
여전히 오늘도 흔들리는 마음은 멈추지 않지만,
그래도 어제보다는 조금 더 단단해진 발걸음으로 너를 만나러 간다.
그때보다는 조금 더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때보다는 조금 더 너그러운 이해로,
그때보다는 조금 더 깊은 사랑으로 너를 다시 만나러 가고 있다.
이제는 네가 나를 조금만 더 믿고, 조금만 더 기다려줘.
나는 완벽하지 못한 존재였기에, 너를 완벽하게 지켜주지 못한 것이 미안하고 미안하고 미안하다.
그래도, <고수의 박수>를 치면서 나는 일어서겠다.
(사진 출처 : Jinipap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