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너는 네 형제의 눈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에 아직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형제에게
'네 눈에 있는 티를 빼 주겠다'라고 할 수 있느냐?
이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런 후에야 네가 정확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
오늘 하루도 잠시 후면 어제가 되는 순간이 다가온다.
크리스천이 아니어도 자주 접할 수 있는 위 성경말씀이 떠올랐다.
무조건적인 관대도, 무조건적인 비판도 아닌 완벽하진 않지만
관대와 비판의 중심에 서 있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물거품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의 그릇된 생각이 잘못된 모습으로 드러나는 수많은 순간순간에
내가 중심이 된 세상에서 나를 바라보고,
내가 나를 편들어 감싸주는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한 것이다.
어떤 일의 바름과 그름에 대하여 돌이켜보고
그릇된 경우 나 자신에게 너그러운 적이 많지 않았고
오히려 비판의 날을 세우며 자신을 다그치어 자책에까지 이르게 하였으나
흔들리는 관대와 비판의 중심추가 나를 옹호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였다.
내 눈이 깨끗하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다만, 내 눈에 '티'는 있어도 '들보'는 아닐 거라는 교만한 생각을 했던 것이다.
'티'로 알고 있었고 '티'이길 바랐던 것이,
다시 들여다본 내 눈에 '들보'가 있었다.
아! 이 부끄러움.
그렇지만 오늘 하루를 부끄러움과 함께 어제로 보내고
그 부끄러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는 오늘에서는 벗어나도록 해야지.
관대와 비판의 중심에서 흔들리지 않도록 두 발에 힘을 꽉 주고 서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