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

by 시간나무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라는 속담에 대하여 국어사전에서는

'말만 잘하면 어려운 일이나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해결할 수 있다는 말'로 풀이한다.


우리말 속담 중 이제는 자주 사용되지 않는 표현에 속한다.

더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은, 말 한마디의 무게와 의미를 온전히 주고받기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다.


내가 배운 대화는, 사람과 사람이 마주 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었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표정을 읽고, 들리는 단어 너머의 진심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야말로 대화가 완성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디지털 소통이 일상화되었다.

귀에 들리는 말소리와 눈에 보이는 표정이 아닌,

말소리 대신 문자로, 표정 대신 이모티콘으로 주고받는 대화에 익숙해져 간다.

물론 다양한 소통 방식이 존재하지만, 귀로 듣는 말보다 손끝으로 쓰는 말로 진심을 담아내기 어러운 이 시대의 소통 속에서 우리는 과연 어떻게 진정성을 찾아야 할까?




40여 년 전, 수학을 좋아하던 나는 고등학교 1학년이 되자마자 <수학 정석>을 들뜬 마음으로 구입했다.

선생님께서 어떤 참고서를 지정하실지 듣기도 전에, 당연히 <수학 정석> 일 거라고 생각했다.

며칠 후 선생님께서 실제로 지정하신 참고서는 <해법 수학>이었다. 순간 아찔했다.


어쩌지?

겁이 없었던 건지, 건방졌던 건지. 어쨌든 혼자 판단하고 앞서간 내 자신이 미웠다.

하지만, 후회보단 해결이 먼저였다.

(부모님께 참고서를 다른 것으로 샀다고 다시 참고서비를 달라고 할 수 있는 형편은 아니었기에 스스로 방법을 찾아야 했다)


나는 고민에 고민을 하다 결심을 했다.

(그 당시 참고서가 어떤 상태였는지 기억이 정확지 않다. 이름을 썼었는지, 한 문제라도 풀었는지...)

나는 <수학 정석> 참고서를 들고 서점에 들어섰다.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갔지만, 내 잘못이라 기대보단 걱정이 앞섰다.

그리고, 서점 주인 (아저씨? 아주머니? 이것마저도 가물가물하다) 분께 나의 사정을 말씀드렸다.


내 이야기를 모두 들어주신 주인 분께서는 아주 잠깐 생각을 하시더니,

"그래, 네 상황이 난처하겠구나! <해법 수학>으로 바꿔주마. 그 대신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

나는 꿈인지, 생시인지...

주인 분께 연신 허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집에 돌아왔다.




그때 이 속담을 몸소 체험하게 된 내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는 이 속담이

이제는 말을 통하여 자신의 어려운 일이나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해결하는 것뿐만이 아닌,

말을 통하여 타인의 어려운 일이나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도와주는 것으로

속담도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으면 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믿는다.

진정성 있는 말 한마디는 천 냥으로도 살 수 없는 그 어떤 강력한 힘이 있다는 것을.

이 순간 누군가를 향한 진심의 말 한마디는

바로 그 누군가를 살리는 '생명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다'라고

세상을 '삶의 빚'이 아닌 '삶의 빛'으로 바라보게 해 준다는 것을.


그럼에도 나는 오늘 어떤 말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다.

또다시 반성과 함께 말의 무게를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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