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

by 시간나무

어렴풋이 생각이 난다.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께서 자주 하시던 말씀이다.

“너희가 공부를 왜 해야 하는 줄 아느냐?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라는 속담이 있다.

기역자 모양의 낫이 눈앞에 있어도, 그것이 기역자인 줄 모른다는 뜻이지.

배우지 않으면 무식하게 살게 된다는 뜻이란다.

너희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지?

자! 그럼 공부해 볼까?”


어릴 적 나는, 이 말을 문자 그대로 이해했다.

어른이 된 지금, 바로 엊그제까지도 그랬다.


그런데 어제, 출근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속담에 ‘낫’이 왜 등장했을까?


사람이 배워야 한다는 걸 강조하기 위한 어른들의 말씀이었고,

농사를 짓던 옛 시절, 슬기로운 조상들은

아이들에게 기역을 설명하며 낫을 예로 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기역을 알고 나면

이 속담은 더 이상 의미가 없을까?

나는 그리 단순한 속담이 아닌 것 같았고,

여기에 나만의 새로운 의미를 덧붙이기 시작했다.

나는 '낫'을 ‘삶의 경험’으로 바꿔 생각해 본다.

살아오며 겪은 수많은 선택과 도전.

셀 수 없는 실패와 가끔의 성공.

마음 설렌 이해와 가슴 시린 오해.

그 모든 시행착오를 통해 나만의 '낫'이 쌓여가고,

그 '낫'은 내 삶의 뿌리가 되어 나를 단단히 세워주는 힘이 된다.

어제, 나와 너 사이에 오해가 있었다면

오늘은 이해로 마주 보아야 한다.

하지만 또다시 어제처럼 말하고 행동한다면

아직 배움이 부족하다는 증거 아닐까?

어제, 작은 실수조차도 후회로 남았다면

오늘은 같은 흔들림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애써야 한다.

그럼에도 또다시 어제처럼 실수를 반복한다면

여전히 낫 앞의 기역자를 모르고 살아가는 것과 같지 않을까?

어린 시절,

마당에 놓인 ''에서 기역자를 배웠다면

어른이 된 지금,

삶이 놓아준 수많은 '낫' 앞에서 기억하자.

지금까지 살아낸 날들의 의미를 기억하고

지금까지 견뎌낸 나의 강인함도 기억하자.


낯선 깨달음.

'낫'을 알고, 나를 알게 되었다.

뒤늦은 깨달음.

'낫'을 보고, 삶의 길을 보게 되었다.


'낫'에는

'ㄱ'만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낫'에는

'ㄴ ㄷ ㄹ ㅁ ㅂ ㅅ ㅇ ㅈ ㅊ ㅋ ㅌ ㅍ ㅎ'도 숨어있었다.


삶이 내게 던져준 수많은 '낫'들 앞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그 의미를 배우며 살아가기를

나는, 나 자신에게 바란다.


(사진 출처 : Jinipap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