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지미 (有終之美)

by 시간나무

하인리히 법칙은,

한 번의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는 같은 원인으로,

반드시 29번의 작은 사고와 300번의 사소한 징후가 나타난다는 통계적 법칙이다.

나는 이 법칙을 안전보건 교육 시간에 부서원들에게 소개하며, 사고 예방과 안전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한 적이 있다.

하인리히 법칙 = 1 : 29 : 300 (대형 사고 : 작은 사고 : 사소한 징후)


그런데 이 법칙은 단지 산업안전이나 재해 예방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마주치는 크고 작은 사건들에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다.

실제로, 엊그제 저녁부터 어제 아침까지 내가 겪은 한 가지 일이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올해 추석이 월초에 있어, 매월 초에 제출해야 하는 보고 업무 때문에 야근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특정 업무에서 오류를 발견했다고 생각해 순간적으로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급히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조치를 취하고, 다음날 아침 해당 업무 담당자와 함께 원인을 찾기 위해 논의를 시작했고,

또 다른 경로를 통해 확인하는 도중, 내가 다른 업무와 착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실제로 아무런 오류가 없었는데,

물리적인 업무량과 제한된 시간 속에서 다급해진 마음이 정신을 흐트러뜨리면서

내가 순간적으로 업무를 혼동했던 것이다.

'다행이다' 싶어 안도했지만, 더 큰 문제가 마음에 걸렸다.

바로, 내 착각 속에서 일의 순서마저 뒤바뀐 것이다.

(평소대로라만 내가 확인할 수 있는 문제들을 먼저 처리 후 마지막에 담당자들에게 묻곤 했는데...)

나는 평소보다 더 단호한 말투로 "이 업무를 왜 이렇게 처리한 거죠?"라며 담당자를 마치 실수한 사람처럼 다그쳤다는 점이다.

어, 어!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나는 곧바로 담당자에게 거듭 사과했지만, 나의 사과는 그의 마음에 스며들지 못하고 허공을 떠도는 느낌이었다.

내 사과가 전해지지 않는다 하여도, 결국 내 잘못이었기 때문에 나는 고개를 들을 수 없다.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를 했다고 해서, 이미 준 상처가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그의 당황스럽고도 억울한 듯 울먹이는 표정에서, 나는 그의 상처를 보았다.




그때 문득, 하인리히 법칙이 떠올랐다.

정말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번 사건을 300번 중 하나인 ‘사소한 징후’라고 말하고 싶지만,

내 체감으로는 29번의 '작은 사고'에 가까웠다.

이런 상태라면, 언제 어디서 1번의 '대형 사고'가 터질지 모른다.




올해 계속되는 과중한 업무 탓이라고 주변에서는 위로해 주지만,

어제의 일은 그런 위로로 넘길 수 있는 가벼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스스로가 너무 부끄러웠다.

정말, 더 조심해야겠다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동안 큰 실수 없이 잘 지내왔는데

정년 퇴임을 1년여 앞둔 지금,

이런 식으로 마무리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에는 ‘유종의 미’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끝이 좋으면 다 좋다(All’s Well That Ends Well)’는 말이 더 익숙해졌다.

이 말은 독일의 격언이자, 영국 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제목이기도 하다.


(결과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과정을 중시하는 나에게는,

이 말이 과정의 노력과 노고를 무시하는 듯하였고, 결과만을 중시하는 것 같아 달갑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마음이 가지 않는 말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일을 겪으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시작도, 과정도 분명 중요하지만

끝을 잘 맺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느꼈다.

끝이 좋다면,

그 모든 과정 속의 실수나 수고가 더욱 의미 있게 남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한 번 시작한 일을 끝까지 잘하여 끝맺음이 좋다'라는

유종지미 (有終之美)를 되새긴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처럼,

남은 시간, 내 일에 책임과 진심을 다해 끝맺음을 잘해서

비록 잘나지는 못했어도,

최소한 부끄럽지는 않도록 마무리하고 싶다.


(사진 출처 : Jinipap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