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이나 과학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오직 경험과 지혜로 만들어진 속담을 마주할 때마다 새삼 놀라움을 느낀다.
그중에서도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은 특히 놀랍다.
'세 살'은 어린 나이를 상징한다.
이 시기에는 아이가 말을 배우고, 성격과 행동 습관이 서서히 자리 잡기 시작한다.
반면 '여든'은 인생의 마지막을 의미한다.
옛날에는 평균 수명이 지금보다 훨씬 짧았기에, 죽을 때까지라는 뜻으로 쓰였을 것이다.
누구나 어릴 적 어른들에게 자주 들었던 말이지 않을까?
나 역시 무슨 행동 때문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럴 때마다 어머니께서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며
타이르시던 모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문득 궁금해졌다.
왜 하필 세 살이고, 또 여든일까?
사람이 자아를 인식하기 시작하는 시점은 보통 만 두 살 반에서 세 살 무렵이라고 한다.
세 살 이전의 행동은 무의식적이지만,
세 살 이후의 행동은 의식 속에서 반복되며 점차 자신의 것으로 굳어진다.
옛날의 평균 수명을 고려하면 여든이라는 숫자는 현실에 없는 나이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든까지를 내다본 것은, 마치 먼 훗날의 수명을 예견한 듯하다.
(어쩌면 오래 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담긴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 놀라운 것이다.
어떻게 인간의 발달 과정을 이토록 정확하게 짚어냈을까?
어찌 되었든,
이 속담은 단순히 아이의 버릇을 타이르는 말이 아니라,
인생의 시작에 형성된 성격과 습관이 평생을 따라간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하나의 습관이 한 사람의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다는 본질을 꿰뚫어 본 것이다.
생각해 보면, 버릇이란 우리의 일상 속에 스며 있다.
아침에 일어나 하루를 맞이하는 마음가짐,
누군가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의 온기,
나에게 주어진 일을 대하는 태도,
잠들기 전 하루를 돌아보는 자세.
이 모든 작은 행동 속에 평생의 습관이 깃들어 있다.
그렇다면 내 '세 살 버릇'은 무엇일까?
혹시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습관이 남아 있다면,
지금이라도 버려야겠다.
여든까지 아직 이십 년이나 남아 있으니까.
(갑자기 엉뚱한 생각이 스쳤다.
다시 세 살로 돌아가, 좋은 버릇을 새로 만들어 오는 것이다.
후훗... 내가 생각해도 웃기지만,
이런 상상을 한다는 건, 아직도 내 안에 나쁜 습관이 많이 남아 있다는 뜻일까?)
좋은 습관 하나가 삶을 단단하게 만들지만,
사소한 나쁜 습관 하나가 나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를 만들었듯,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를 만든다.
그렇게 쌓인 하루하루가 결국, 여든의 나에게까지 이르게 한다.
나를 위해,
언제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
그 용기에 힘입어
좋은 습관 하나쯤은 꼭 만들어봐야겠다.
그래서 '좋은 습관 들이기'에 도전한다.
어떤 습관이 좋을지 고민한 끝에,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작심삼일로 끝났던
'감사일기 쓰기'를 다시 시작해 본다.
통제의 필요를 알지 못했던 '세 살의 오래된 버릇'은 잊고
절제의 가치를 깨달은 지금 '예순의 새로운 버릇'으로
여든까지 이어질 좋은 습관을 만들어 가고 싶다.
지금은 도전의 의도로 시작하지만,
언젠가는 의식하지 않는 호흡의 리듬처럼
내 일상의 바퀴와 함께 굴러가는 그날을 꿈꾼다.
오늘 나는 나만의 속담을 만든다.
또다시 도전하는 나 자신에게 보내는 응원으로
그러니, 불가능하다고 주저하지 말고 지금 바로 시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