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출근길.
흔하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지하철에서 있었던 일이다.
흔들림이 크지 않은 지하철에서는 중심 잡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런데 중간에 살짝 흔들렸던 것일까? 나는 느끼지 못했는데, 옆에 서 있던 아가씨가 살짝 휘청하며 내 쪽으로 기대었다.
그녀는 미안하다는 눈짓을 보냈고, 나는 괜찮다고 말로 답했다.
그 순간, 얼마 전 들었던 엄나무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가시나무’ 또는 ‘개엄나무’라고도 불리는 엄나무는 가시를 많이 만들어낸다.
그 까닭은 자신이 너무 연약할 때 초식동물들이 기대면 줄기가 부러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략적으로 날카로운 가시를 만들어 동물들이 함부로 기대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특히 어린 나무일수록 손상되면 회복이 어려우므로, 더욱 강력한 방어 장치로서 가시를 많이, 또 날카롭게 만들어 낸다고 한다.
그런데 스스로를 지킬 만큼 줄기와 가지가 단단해지면, 그 나무는 스스로 가시를 둥글게 만들어서 떨구어 버리기도 하는데, 어른 나무가 되면 동물들이 기대도 위협이 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정말 놀라운 일이다.
단단함이 오히려 부드러움을 품는다는 사실이...
우리도, 아니 나부터 수없이 많은 가시를 만들며 살아가고 있다.
나 역시 언젠가는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 만큼 마음의 중심이 든든해지면,
그 가시들을 하나하나 떨구며 살아갈 수 있을까?
사람들은 흔히들 말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라고...
그러나 나는 물리적인 나이를 중요하게 여기며,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편이다.
(물론, 나잇값을 제대로 하는 어른다운 어른으로 살고 싶은 큰 욕심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이라는 것은 단지 세월의 흔적만이 아니라,
그 시간 속에는 나의 기쁨과 슬픔이 녹아 있고, 너의 웃음과 눈물도 함께 담겨 있으며.
그 시간 속에는 삶에 대한 의지와 신뢰 그리고 희망을 품은 자에게,
기억 한 점, 추억 한 점, 그리움 한 점이 이어져 선을 이루듯.
조금씩 조금씩 성숙해져 가는 자신의 존재를 알아가게 해주는 생명의 선이니까.
그렇다면 나는 지금쯤, 대부분의 가시들을 떨구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도 여전히, 나는 자라나는 가시들을 발견한다.
나는 언제쯤, 내 가시들을 떨구어 낼 수 있을까?
그날이 속히 온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