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7일 아침, 시원한 공기가 느껴졌다.
불과 하루 전까지만 해도 아침 공기는 뜨겁고 무거웠지만,
그 하루 사이의 미묘한 변화를 내 몸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날 이후, 시원한 공기는 들락날락했다.
에어컨을 끄면 금세 더워져 다시 켜야 했고,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며 날씨와 줄다리기를 했다.
그러다 마침내,
에어컨 없이 하루를 온전히 보낸 날이 찾아왔다.
나에게는 바로 오늘, 9월 20일.
나는 이 날을 ‘여름 보내기 날'이라고 부른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인지,
이제 여름은 더 길고, 더 예측하기 어려워졌다.
올해 2월, 한 기후학자가
"평년보다 더 빠르게 4월부터 시작해 11월까지 더 길게 갈 것"이라 전망했지만
다행히 그 예고는 빗나갔고, 실제 여름은 6월에 시작됐다.
(물론, 내가 조금 다르게 기억할 수도 있다)
작년의 극심한 무더위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번 여름이 오기 전부터 겁을 먹었을 것이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출퇴근길 마스크 착용은 일상이 되었고, 여름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올해 여름에는 도저히 마스크를 쓸 수가 없었다.
숨이 턱 막히고, 땀이 얼굴에 들러붙는 것이 견디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사계절은 사라지고 여름만 남은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누군가는 작년이 더 더웠다고 하고,
또 누군가는 올해가 훨씬 더 혹독했다고 말했다.
어느 쪽이든, 우리는 폭염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낼 수밖에 없었다.
길을 걷는 것조차 힘들었다.
우리가 걸어야 했던 그 길은 그냥 길이 아닌
작열하는 태양 아래 드러난 길을 걸어야 했기 때문에
양산 없이 걷는 것은 어느새 모험처럼 다가왔고,
그래서였을까?
양산을 든 손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그러나 자연은 언제나 자기의 속도로 걸어간다.
조급해하지 않고, 묵묵히 제시간에 맞춰 흘러간다.
유난히 길고 지쳤던 작년 여름도 그렇게 지나갔고,
숨 막히고 뜨거웠던 올해 여름도 이렇게 물러가고 있다.
놀라운 건, 그 끝이 단 하루 차이로 찾아왔다는 것이다.
물론, 이건 내가 느낀 여름의 끝이지만...
나에게는 계절이 오고 가는 문턱이었다.
그날처럼 오늘도
나는 자연의 섭리 앞에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나의 불평과 투정이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어느 예년의 여름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기온도 높았지만, 기간이 너무너무 길었다.
에어컨을 켜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어
전기료 걱정은 뒤로 미루고
매일 에어컨을 가동했다.
그런데, 어?
가을이 오나?
오늘 밤,
에어컨 가동을 멈추고
창문을 살짝 열어 보니
선선한 공기가 느껴진다.
여름 내내 에어컨 없이 살 수 없었는데
우~와~~
에어컨 없이 잠을 청할 수 있는 밤이다.
오지 않을 것 같던 가을이
드디어 오고 있나 보다.
(2024년 9월 21일 서랍 속 이야기를 꺼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