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상식'의 잣대는 누가 정하는가

by 시간나무

직장인들이 분주히 출근하는 시간.

학생들이 서둘러 등교하는 시간.

그 복잡한 시간대에 예상외로 많은 어르신들이 외출을 하신다.

오늘 아침도 예외는 아니었다.


내가 타는 정거장에서도 몇 분의 어르신들이 버스에 오르셨고,

버스 안에는 이미 자리에 앉아 계신 분들도 있었다.

빈 좌석이 없어 손잡이를 잡고 있는데,

갑자기 버스 중간쯤에서 고함이 들렸다.

한 아주머니가 학생 옆에 서 계셨는데,

그 학생이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 어르신이 자신의 지팡이를 들어 올리며 외치셨다.


“이 몰상식... 이런 몰상식한 놈을 봤나.

어른이 탔으면 일어나야지. 앉아있어?

이런 몰상식한 놈을 봤나.”

그 목소리는 버스 안을 가득 채웠다.


학생은 어쩔 줄 몰라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때 옆에 서 있던 아주머니는 괜찮다고 하시며

학생의 어깨를 눌러 다시 자리에 앉혔다.

학생이 스스로 앉은 것이 아니라, 그 아주머니가 앉힌 셈이었다.

그리고, 두 정거장 뒤에 학생은 내렸고,

그 아주머니는 자연스레 그 자리에 앉으셨다.


이런 광경은 종종 본다.

그러나,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학생에게 호통을 치던 그 어르신이 갑자기 코를 푸셨다.

감기에 걸리셨나 보다 하고 넘기려는데,

이번엔 가래를 뱉으셨다. 물론 휴지에 뱉긴 했지만...

앞자리에 앉은 아주머니가 움찔하며 몸을 의자 끝으로 옮길 정도였다.

그리고, 또다시 코를 푸는 소리가 이어졌다.

나는 생각했다.

‘이것이 과연 상식적인 행동일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몰상식'을 외치던 어르신.

정작 자신의 행동이야말로 '몰상식'의 전형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으신 듯했다.


그 상황에서 내가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긴 것은,

그 학생이 이미 내린 뒤였다는 것이다.

만약 그 장면을 봤다면,

그 학생은 어른들에 대한 환멸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타인의 '몰상식'을 꾸짖으며,

자신의 '몰상식'은 자각하지 못하는 그 모습에

나 역시 어른으로서 부끄러웠다.

'몰상식'

그 잣대는 누가 정하는가.


오늘 버스 안에서 '몰상식'의 잣대를 휘두른 사람은 분명 그 어르신이었지만,

그 잣대를 무너뜨린 것도 그 어르신 자신이었다.


출근길 내내 그 학생이 떠올랐다.

우리는 타인의 사정을 다 알 수 없다.

요즘 학생들의 자리 양보를 보기 드물다고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가 모르는 사연이 있을지도 모른다.

눈으로 보아서는 알아차릴 수 없지만

어젯밤 아픈 가족을 돌보느라 잠을 설쳤을 수도 있다.

형편상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피곤했을 수도 있다.

그저 늦게까지 휴대폰을 하다 잠들어 졸렸을 수도 있다.

다행히 이런저런 사정이 없는 평범한 학생이라 하더라도,

예절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책임은 결국 어른에게 있지 않을까.


이유가 무엇이든,

‘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젊은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어른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래서, 오늘 나는 다짐했다.

만일 빈자리가 없어 서서 가야 한다면

학생이나 젊은이 옆에는 서지 말아야겠다고.


그 청춘들도 지난밤,

각자의 짊어진 무게를

버스 안의 작은 공간에서 처음 내려놓은 순간일 수도 있다.

그 청춘들도 오늘 하루,

저마다의 무게를 버텨내며

버스 안의 그 짧은 시간이 처음이자 유일한 쉼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그 작은 공간, 그 짧은 시간의 쉼을

나로 인해 부담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


우리가 어른으로서 해야 할 일은

양보를 받는 것이 아니라

아픈 청춘을 이해하고

아파도 일어서는 그들을 기다려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아주 짧은 쉼이라도 필요한 청춘들을

어른이 너무 쉽게 손가락질해서는 안 된다.


우리도 그 청춘을 살아봤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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