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Good-bye

by 시간나무

2 2025년.

0 영혼이 편히 쉴 곳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시간.

2 이제는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나날들.

5 오장육부가 수십 번 뒤틀리듯, 몸도 마음도 견디기 어려웠던 순간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으로서의 진실한 삶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래서 더 치열했고,

그만큼 더 고통스러운 시간 속에서

하루하루 삶의 무게가 쌓여갔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은

매 순간의 작은 선택들 덕분에,

올해를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보낼 수 있다.


그토록 매서웠지만,

막상 손을 놓으려니 눈물이 난다.

그것도, 내 시간이었으니까.


잘 가라!

그래도 끝내 외면하지 않고

마주 보며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다니.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어떤 강도가 다른 사람의 소유물을 보고 탐욕을 품으면 당신은 그를 가리켜 늑대 같다고 말하겠죠.

어느 다혈질인 사람이 늘 법정에 가서 혀를 쉬지 않고 놀린다면 당신은 그를 사냥개에 빗댈 것입니다.

혹시 누군가가 교활한 계략을 감춘 채 숨어 있다가 갑자기 다른 사람을 덮치기를 좋아합니까? 그럼 그는 여우 같은 자입니다.

또 누군가가 분노를 주체하지 못한 채 고함을 치기를 좋아합니까? 그는 사자의 마음을 품은 자라고 여겨지겠죠.

딱히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데도 멀리 달아나 공포에 떠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는 사슴처럼 여겨질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게으르고 나태하다면 그는 사실상 나귀의 삶을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닐까요?

일관된 목표가 없이 툭하면 변덕을 부리는 사람은 새랑 다를 바가 하나도 없습니다.

누군가가 더럽고 추잡한 욕망의 진창에서 구르고 있다면 그는 불결한 돼지의 욕망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이렇듯 선함을 잃어버린 사람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며 짐승으로 변하고 맙니다.


데이비드 리빙스턴 스미스의 「인간이하」 中

(보에티우스에게 악한 사람은 인간성을 상실한 것이라며 이렇게 설명한다.

"선으로부터 멀어진 모든 것은 존재 또한 멈추게 됩니다. 악한 자들은 더 이상 인간이기를 멈추게 되는 것이지요."

보에티우스는 우리가 일상 담화에서 사용하는 동물의 비유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논의함으로써 그 대답을 완곡하게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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