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유를 외친다

by 시간나무

희망을 품고 한 걸음을 내디뎠다.

보이지 않는다 해도, 길은 분명 있으리라 믿으며 조심스레 첫 발을 옮겼다. 확신이 없다고 희망조차 품지 못한다면 한 걸음조차 떼지 못하기 때문이다.


열정을 어깨에 얹고 쉼 없이 걸어왔다.

숨이 가쁘고 땀이 흘러도 멈추지 않았다. 멈추는 순간, 지금까지의 발걸음이 한꺼번에 무너질 것만 같았다.


조금만 더 걸으면 끝이 모습을 드러낼 듯했다.

그곳에 닿으면, 지나온 길을 회상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이해하며 미소 짓는 순간이 오리라 믿었다.

그러나 마지막 열두 걸음을 내디디는 순간,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

황색 경고도, 적색 신호도 없었다. 그렇게 아무 기척도 없던 그곳에서 '허무'라는 덫에 단단히 붙잡혔다. 상상도 하지 못했고, 예측할 수도 없었던 일이었기에 갑작스러운 엄습 앞에서 나는 당혹했다.

본능은 탈출을 명령했다.

무작정 몸부림쳤다. 그러나 움직일수록 덫은 더 조여 왔다. 숨을 한번 고르고 이유를 찾으려 하자 공허는 커졌고, 이해하려 할수록 정신은 점점 흐려졌다.




흐려진 정신을 붙잡고 생각을 거꾸로 돌려본다.

덫에 걸리기 직전으로 돌아가 걸음의 방향을 살핀다. 어느 길에서, 어떤 걸림돌 앞에서 멈추지 못했는지 차근히 되짚어본다. 그때 내가 할 수 있었던 일,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그 무엇이 나를 멈추지 못하게 하였는지를.


길을 걷다 보면 예고 없이 안개가 내려앉는 순간이 있다.

내가 원하지도, 내가 만든 것도 아닌데 시야가 완전히 가려진다. 그런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방향을 잡는 것도, 속도를 조절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결국 남는 선택은 단 하나, 기다리는 것. 안개가 걷히는 시간을 재촉하지 않는 것. 보이지 않는 동안에도 길은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 있다고 믿는 것.


몸부림이 출구가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해졌다.

마침내 멈추었다. 도망치듯 벗어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렀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힘을 빼야 했다. 덫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니 오히려 아껴야 한다는 것을. 서두르지 않아야 했다. 그 과정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덫은 밀어내야 할 적이 아니라, 멈추어 나를 바라보게 하는 자리였다. 덫은 저항이 아니라 자각 속에서 비로소 출구가 보인다는 것을.



삶은 종종 나의 의지와 무관한 그 어떤 힘으로 나를 압도한다.

예기치 못한 사건과 돌발 상황, 불안과 절박함이 뒤섞인 부정의 감정, 그리고 설명되지 않는 상실이 나를 덮쳐올 때 나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느닷없이 찾아온 외부의 힘이 아무리 강력하더라도, 그 힘에 눌릴지 버틸지는 결국 내가 선택한다.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 그것은 내가 자유의 주인이라는 의미이다.


나는 여전히 자유롭다.

지금의 나를 자책하며 좌절감에 빠지는 대신 자신을 수용하며 신뢰감을 회복할 수 있는 자유. 어긋난 길에 들어설 때 방향을 다시 정할 수 있는 자유. 그리고 너무 오래 걸어 발이 부르트면 잠시 멈출 수 있는 자유. 이 모든 것을 선택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이 자유가 있기에, 내 안의 빛을 따라가는 길을 걸을지, 나를 어둠 속으로 내모는 길을 택할지는 온전히 나의 권리이자 책임이다.


나에게 선택할 자유마저 없었다면,

나는 길 위에 설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이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가!


나는 다시, 길 위에 선다.

나는 다시 길 위에 서서, 나의 자유를 외친다.


열흘 전 나의 의지와 무관한 그 어떤 상실이 나를 덮쳐와 온몸으로 저항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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