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무가 침묵으로 말하다

by 시간나무

출근길에 늘 만나는 나무가 있다.

봄에도, 여름에도, 가을에도

매일 아침 스쳐 지나가며

나는 당연하다는 듯 눈인사를 건넨다.

새순이 움트는 약동의 위대함,

잎이 무성해지는 강렬의 찬란함,

열매가 익어가는 풍성의 황홀함 속에서

나무는 언제나 그렇게

당당히 서 있을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올겨울의 길목에서 마주한 나무는 낯설었다.

비도 피할 수 있을 만큼 우거져있던 잎사귀도,

볼수록 예뻐 눈을 뗄 수 없던 꽃들도

모두 떨궈낸 채

나무는 오직 앙상한 가지로만 홀로 서 있었다.


서릿발 같은 칼바람이 가지 사이로 휘몰아치고,

그 앞에서 내 마음도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함께 흔들렸다.

나도 모르게 나무 아래로 걸어 들어가

고개를 들어 그 가지들을 올려다본다.

이제는 무엇 하나 가려줄 것 없이

앙상한 가지는 눈보라를 고스란히 받아낸다.

그 순간, 앙상한 가지 사이로 하늘이 보였다.

새순이 돋고, 잎이 자라고, 꽃이 필 때에는

보고자 하는 마음도, 보이지도 않았던 하늘이

모든 것이 떨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드러난다.

아! 사람도 그러한가.


삶의 끝자락에 서면

내 것이라 여기고 자랑하던 많은 것들...

아이와 같은 순수함,

청춘의 빛나는 생동감,

중년의 온화한 풍요함이 하나둘 사라지고

노년의 황량한 계절에 접어들면

그제야 한 사람의 본연이 드러나는 것일까.

(결코 아니라고 우겨보고 싶지만, 나 역시도)

푸른 잎 뒤에 은밀히 숨겨두었던 교만과

무성한 열매 속에 교묘히 가려두었던 욕심.

끝까지 가지 끝에 매달린 채

겨울 하늘 아래 더는 숨을 곳을 참지 못하고

선명하게 드러나는 자만에 의한 오만을 보았다.


나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아왔다고,

지금도 그러하다고 믿고 있었는데

아니었다.

(그 탓에 어젯밤)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내가 부끄럽고, 내가 너무도 부끄러워

끝내 목 놓아 울고 말았다.

참 어렵다.

살다 보면 저절로 성숙한 어른이 될 줄 알았는데

세상에 공짜로 주어지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뼈아프게 깨닫는다.

이 겨울.

나는 겨울나무가 침묵으로 들려주는 말에

고요히 귀를 기울인다.

외면의 허울이 아닌 내면의 진실을 살피고, 또 되살피라고.

나이로만의 어른이 아닌 진정한 진짜 어른다운 어른이 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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