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판 함정에 빠져 있었다.
세월 앞의 위험도 충분히 비껴갈 수 있고,
닳아가는 체력조차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어떤 역경과도 맞서 겨룰 수 있다 자부했던 서슬 퍼런 교만.
마치 무적의 청춘이 영원할 줄 알았다.
그렇게 무모한 스턴트맨으로 달려온
내 인생에서
턴(turn)을 해야 하는 굽이길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안경 없이는 책 한 페이지 넘기지 못하고,
계단 앞에서 삐걱거리는 무릎은
세월의 풍파 때문이 아니라
내 생의 시간이 내 몸에 보낸 수많은 신호를 묵살했던 오만의 결과임을...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것은 외부의 시련이 아니라,
단단하다 믿었던 내 안의 자만이었다.
트릭(trick) 같은 맷집을 강인함이라 속이며 스스로를 몰아붙였지만,
그것은 한계를 부정하고 싶었던 한심한 허세였고
돌봐야 할 건강을 외면해 버린 비겁한 회피였다.
내 삶의 고난과 노쇠를 대신 짊어질 대역은 그 어디에도 없는데,
무엇을 위해 그토록 자신을 혹사하며 나를 속여왔던가.
맨몸으로 바닥에 넘어지고 보니
너무 낯설게 다가온 상처투성이인 진짜 나를 발견한다.
나 또한 부서지기 쉬운 연약한 존재임을 너무 늦게 인정한다.
미안하다, 나의 몸아!
뼈의 고통으로 뼈의 눈물을 마주하고서야
거짓된 강인함의 분장을 씻어내고
피 흘리는 너의 진실 앞에 너를 안아준다.
코피.
고등학생 시절, '이렇게 코피를 흘리면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할 만큼 쏟은 적이 있었다.
그때 엄마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물론, 어른이 되면서 코피라는 말이 있었나 할 정도로 까마득히 잊고 살았다.
그런데, 끝없이 쏟아지는 업무량에 지난주 일주일 내내 코피를 흘렸다.
불현듯 불길한 생각을 했다.
'나는 나를 스턴트맨인 줄 알고 겁 없이 살고 있었나?'
이 얼마나 아둔한 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