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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이어깨동무 Nov 27. 2019

1. 코리밀라로 왔습니다.

by 파랑

2013년에 ‘어린이어깨동무’에서 '동아시아 어린이 평화워크샵' 모둠교사를 하면서 회원이 되었고, 2018년 9월에 어린이어깨동무에서 코리밀라로 파견하는 첫 번째 자원활동가가 되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은 어린이어깨동무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어린이어깨동무는 한반도가 더 이상 갈등과 분쟁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고 남과 북의 어린이들이 서로 마음을 나누는 평화로운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북녘 어린이 지원, 평화교육문화활동, 남북어린이 교류사업 등을 전개하고 있는 단체다. 코리밀라는 북아일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평화단체로, 북아일랜드의 갈등 해결과 평화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어린이어깨동무는 코리밀라를 서울로 초대하여 평화교육 심포지엄을 진행하였고, 자원활동가도 파견하는 등 교류활동을 하고 있다. 두 단체 모두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하고 있다.


갑자기 영어로 된 세상에 떨어졌다.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지? 나는 여기서 무슨 일을 해야 하는 거지?

한국으로 치면 고등학교 2학년 친구들과 캠프 프로그램을 한다. 당장 영어로 북아일랜드 청소년들과 아이스 브레이킹 게임을 진행해야 했다. 다행히 유스 워커(청소년 지도자)가 도와준다고 했지만 영어로 활동을 이끌 수 있을지 두려움이 앞섰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2018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8년 9월, 나는 북아일랜드 벨파스트로 갔다.

2018년 9월 9일, 나는 여기 북아일랜드 평화단체인 ‘코리밀라 커뮤니티’로 장기 자원활동가로 왔다. 여기서도 많이 받는 질문이다. 왜 북아일랜드까지 갔어요? 어떻게 코리밀라를 알았어요?


나는 20살부터 ‘어린이어깨동무’에서 자원활동을 하면서 회원이 되었다.  어린이어깨동무는 한반도가 더 이상 갈등과 분쟁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고 남과 북의 어린이들이 서로 마음을 나누는 평화로운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북녘 어린이 지원, 평화교육문화활동, 남북어린이 교류사업 등을 전개하고 있는 단체다. 어린이어깨동무는 2017년 코리밀라를 방문하면서부터 코리밀라와 교류를 하고 있다. 코리밀라를 서울로 초대하여 평화교육 심포지엄을 진행하였고, 자원활동가도 파견하고 있다. 나는 코리밀라로 파견하는 자원활동가의 첫 타자가 되었다.

코리밀라는 대화와 만남을 위해 오는 사람 모두에게 '안전한' 장소다.


코리밀라는 북아일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평화단체로, 북아일랜드의 갈등 해결과 평화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설립자인 레이 데이비 목사는 2차 세계대전에서 포로수용소에서 있던 경험을 통해 공동체와 사람 간의 만남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전쟁이 끝난 후, 대학교 교목으로 있으면서 해변 마을인 밸리카슬에 있는 오래된 숙박센터를 개조해서 코리밀라 공동체를 설립한다. 센터는  북아일랜드 갈등 기간 동안 갈등의 중간지대로 수많은 사람에게 평화와 회복을 이야기해왔다.


한 학년이 60명이라고? 


옆 마을에서 통합학교 13학년 모두가 코리밀라로 캠프를 왔다. 가톨릭계와 개신교계의 갈등이 심각했던 북아일랜드는 학교도 가톨릭계, 개신교계, 통합학교로 나누어져 있다. 우리나라 고등학교 2학년에 해당하는 13학년이 대학 입학시험인 A-level을 준비하기 전에 캠프를 온 것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수능을 준비하기 전 마지막 캠프랄까?


그렇게 코리밀라에 온 친구는 13학년 전원인 학생 60명과 선생님 5명이었다. 5년간 동고동락했던 60명 친구들이 고등학교 생활 후반부에 가는 캠프인 것이다. 한국에서 내가 살던 지역 고등학교는 대부분 한 학년에 300명이고, 10 학급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코리밀라에 왔던 학교들은 더 작은 경우가 많았다. 초등학교 한 학년이 30명인 경우도 많았고, 한 학년이 60명이 넘는 경우는 학급당 20명도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한 학년 300명 정원이 보통인 동네에서 온 나는 놀랐지만, 다른 나라에서 온 자원활동가 친구들은 그렇지 않았다. 독일에서 온 친구도 자기 학년 전체가 60명이란 이야기를 해줬다.

 


나의 몸과 정체성을 그려봅시다  


평화단체인 코리밀라에서는 청소년 캠프에는 어떤 프로그램이 있을까? 코리밀라 청소년 프로그램에는 정체성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정체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북아일랜드의 갈등과 관련이 있다. 북아일랜드는 1969년부터 성금요일 협정(혹은 벨파스트 협정)이 체결된 1998년까지 가톨릭계와 개신교계의 갈등이 심각했다. 이 기간을 ‘Troubles’라고 부른다. 가톨릭계와 개신교계 사람들은 분리되어 살았고, 학교도 개신교계와 가톨릭계가 따로 있었다. 그래서 교육에서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정체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 캠프에서도 ‘Me, Myself& I’라는 정체성을 다루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한 명이 긴 종이에 누우면, 다른 한 명은 몸을 따라 그린다. 그리고 몸 안의 몸의 주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한다. 이 과정에서 정체성이 무엇인지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자신을 ‘어디 쪽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스스로를 영국 사람 혹은 아일랜드 사람으로 생각하는지, 가톨릭 아니면 개신교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스스로를 가톨릭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영국 사람, 아일랜드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를 ‘북아일랜드’ 사람으로 생각한다는 대답도 나왔다. 이미 8학년부터 함께 해온 친구들은 편한 분위기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크게 보이는 건물이 본관(Main house)이다.


이 활동에서 중요한 점은 무엇일까요? 


정체성 프로그램 이외에도 코리밀라에는 여러 프로그램이 있다. 그중 하나가 팀빌딩 활동이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팀빌딩 활동은 ‘Rava river, Key punch, Pipes, Rasing the sun, Mindsweeper’ 등이 있다. 이 중에 ‘Key punch’ 하나만 소개하려고 한다. 바닥에 있는 원 안에는 숫자 1부터 30까지 무질서하게 놓여 있고, 숫자를 순서대로 만지는 게임이다. 규칙은 다음과 같다. 숫자 1부터 30까지 순서대로 신체의 일부를 사용해 만질 것, 원 안에는 한 번에 한 명만 들어갈 것, 숫자를 움직이지 말 것, 모든 사람이 숫자를 적어도 한 번씩 만지는 것이다. 함께 숫자 1부터 30까지 빠르게 만지는 것이 게임이다.

생각해보자. 바닥에서 1부터 30까지 놓여 있다. 원 안을 둘러싼 18살의 아이들. 처음에는 삐걱대고 아이들은 우왕좌왕이다. 서로 숫자를 만진다고 한꺼번에 발을 내민다. 삑. 한 번에 한 명만 원 안에 들어갈 수 있다. 다시 시작한다. 시간은 40초가 넘게 걸린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계획을 짜기 시작한다. 한 명부터 만질 숫자를 정하기, 숫자를 외치면서 만지기, 활동에 집중하기. 그리고 자원활동가는 아이들에게 물어본다.

“이 활동에서 중요한 점은 무엇일까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활동을 어렵게 한 점은 무엇일까요?”

활동에 참여한 아이들은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대답한다. 서로 집중하지 않아서 숫자가 몇 번인지 몰랐다, 다른 친구가 아직 원 안에 있는 것을 못 봤다. 서로 숫자 몇 번을 만질지 몰라서 두 사람이 한꺼번에 원 안에 있었다. 이제까지 내가 참여한 그룹 중에서 가장 빠른 기록은 12초대였다. 아이들이 발로 슬금슬금 숫자를 미는 것, 원 안에 슬그머니 두 사람이 들어간 것을 모두 눈감아 준 결과다.  


본관 옆에는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풀밭이 있다.


What’s the craic? Wee spoon?


북아일랜드에 처음 왔을 때 걱정 중 하나는 영어였다. 한 번도 외국에 10일 이상 나가본 적이 없어서 영어로 이야기하는 것이 가장 걱정이었다. 토익 점수도 나름 높았고, 오기 전에 영어를 드라마랑 영화 보면서 공부했으니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북아일랜드는 ‘북아일랜드식 영어’를 쓴다.

농담으로 한 번은 코리밀라에게 2년 넘게 있던 인턴에게 코리밀라에서 내 목표를 말한 적이 있다. 3명만 넘어가도 대화를 따라가기 힘들어지니까 식사시간에 ‘6명’이 앉은 테이블의 대화를 따라가는 것과 북아일랜드식 억양이 심한 요리사와 대화를 술술 하는 것. 내 ‘소박한’ 계획을 이야기했다. J는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미국에서 와서 영어를 모국어로 쓰고, 여기 2년 넘게 있던 자신도 아직 요리사의 이야기를 다 못 알아듣는다고. 다른 주방 스태프도 솔직히 전부 알아듣는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했다.

이제까지 주로 미국식 영어를 배웠다. 영국식 영어라고 해도 잉글랜드, 그것도 런던에서 쓰는 영어나 드라마나 영화에서 잠깐 들어봤을 정도다. 북아일랜드 와서 영어로 이야기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주방에는 식기류를 정리하기 쉽게 이름표가 붙여져 있다. ‘knifes’, ‘spoons’. 이름표를 쭉 읽어보던 나는 당황스러운 이름을 발견했다. ‘wee spoons’? 조그만 티스푼이었다. 이게 왜 wee spoons인 거지? 이름을 알았지만, 그렇게 불리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캠프 아이들은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wee’는 북아일랜드에서 ‘작은’이라는 뜻이라고. 그래서 작은 숟가락인 티스푼을 ‘wee spoon’이라고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북아일랜드에서 쓰인 다른 영어 표현도 알려줬다. 안부를 물어볼 때는 What’s the craic? 캠프 아이들은 재밌다는 듯이 다른 봉사자에게 북아일랜드식 영어 표현을 적어줬다.   



What’s the craic? 앞으로도 코리밀라 공동체에서 있던 이야기를 계속 적어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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