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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국 Sep 07. 2024

모터바이크의 가치를 확대하는 방법

2014년 9월 6일 노르웨이 오슬로 도착하다- 트랜스 유라시아

9월 5일 오후 1시,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출발, 밤 12시경에 노르웨이 국경을 넘었다.  


추석이 가까워 보름달이 떠있지만 인적이 끊어진 숲 길은 캄캄하다.


밤길을 계속 달려 오슬로 1백 Km 부근까지 접근했다.


달리면서 길 주변에 텐트를 세울만한 곳을 찾기 시작했다.


 느낌이 오는 곳에서 모터바이크의 속력을 줄이고 길 밖으로살짝 벗어났다.  트럭주차장이다. 넓은 공간 저 멀리에 트럭 한 대가 희미한 조명 아래 멈추어 있다.


하루종일 바이크에서 오는 진동을 흡수한 몸은 지쳐있다.


서리가 살짝 내려있는 추운 환경에서 움막 같은 텐트를 세우고 바이크에 비옷을 씌우고 잠자리 안으로 들어간다.


이른 아침, 추위로 인해 오그라든 몸을 풀어주려 텐트 주변의 호숫길을 따라 한 바퀴 돌았다.


바이크 위에 짐을 꾸리고 오슬로를 향해 출발했다.


시내로 연결되어 있는 여러 개의 터널 속에서 몇 번인가 헤매다가 겨우 도심 중심부에 들어서게 되었다.


오슬로를 찾게 된 이유는 두 가지이다.


노벨평화상 관련 시상식이 열리는 오슬로 시청을 보기 위해서이다.


바다로 접해있는 시청광장에  완성도가 높은 조형물들이 배열되어 있다.


시상식이 열리는 시청 안에도 대형 벽화들이 설치되어 있다.


작품과 같은 느낌의 변기가 있는 화장실 공간도 인상적이다.


장소를 옮겨 아문센의 흔적을 바라볼 수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프람 전시관이다. 그와 관련된 공간으로 들어서자 극지탐험과 관련한 영상물을 볼 수 있었다.


그린란드를 개척한 선배 난센이 사용했던 배 프람호는 탐험프로젝트를 들고 찾아온 후배 아문센에게 흔쾌히 전달되었다.


이들의 이야기는 유라시아 대륙횡단에 사용되었던 나의 모터바이크의 미래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누구에게 모터바이크가 나누어졌을 때 가장 의미가 있을까.


암스테르담에서 만난 현지인 대학생과 시베리아의 시골 마을에서 자동차 펑크 때우는 일을 하고 있던 러시아인 젊은이를 후보자로 생각해 보았다.


아문센 기념관 앞마당에는 남극점 정복을 위해 함께했던 동료들이 아문센과 함께 출정을 위한 복장으로 바다 쪽을 향해 바라보고 있는 인물상이 실물 크기로 세워져 있다.  


아문센의 흔적을 보고 싶었던 것이 오슬로를 찾은 주 이유이다.


비싼 물가에 부담을 느껴 오후 다섯 시쯤 시내를 빠져나왔다.

계속 달리다가 노르웨이 국경을 벗어났다.


스웨덴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깎아지른 절벽 위에 놓인 긴 다리와 만나게 되다.


석양 무렵에 몹시 인상적인 풍경이다.


아이패드를 들어 사진으로 남겨보고자 했지만 카메라 앵글 안으로 그 광경을 담을 수가 없어서 내려놓고 마음속에 넣어본다.


시동이 걸린 상태로 정지해 있는 바이크 위에 다시 몸을 실었다.


절벽 위에 놓인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다가 트럭주차장을 만났다.


화장실에 잠깐 들렀다가 나와 주차장 광장입구에 세워진 악수하는 모양의 대형조형물에게 다가갔다. 손가락부터 손목까지로 이루어져 있다. 심플한 형태의 북유럽 디자인이 적용된 작품이다.


편도비용만으로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해서 암스테르담까지 갔다가 되돌아갈 수 없는 환경이 지속되면 모터바이크를 현지에서 정리하고 아프리카로 들어가려고 했다.


구체적인 계획 없이 들어가려던 곳이 소말리아이다.


그런데 스웨덴의 국경부근의 주차장에서  노르웨이로 이제 막 이주했었다는 아프리카의 소말리아인을 만났다.


내게서 소말리아에 대해서 떠올려지는 키워드는 해적이다.


소말리아의 환경이 어떠냐는 나의 질문에 ‘자신의 고향은 누구에게나 아름답다. 하지만 나는 지금 고향을 떠나왔다 ‘.  ’왜 그러겠는가’라며 내가 이미 소말리아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알고 있을 거라는 듯이 내게 반문을 한다.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는 그.

그의 입을 통해 허공으로 흩어지는 담배연기.


그는 노르웨이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스웨덴으로 넘어가는 중이라고 했다.


주머니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의 왼손에 들려있는 빨간색 말보로 담배각.


나는 신교수님의 빨간색 말보로 담배각을 떠올렸다.


내게 담배 한 대를 권하려는 것 아닌가? 담배를 끊었지만 바로 받아 들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물가를 가진 노르웨이에서 구입한 담배를 내게 권하는 소말리아인.


그와 나는 이렇게 서로의 손을 잡게 되었다.


이후,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육로 길을 통해 한국으로 귀국하게 된 나는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


대륙횡단에 사용되었던 모터바이크는 전시장에서 살아있는 소품이 되어있다.


힘들던 시절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모터바이크의 가치가 어떻게 확장될 수 있을까 다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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