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모스크바는 뜨겁다- 제7차 대륙횡단

나를 넘어서는 대의와 가치에 대한 확신을 가진 사람들

by 김현국

나를 넘어서는 대의와 가치로 사는 사람들


2026년 1월.

베이징을 경유해 열다섯 시간을 날아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에는 인터넷을 연결해 주는 심카드를 파는 상점이 보이지 않는다. 공항을 조금만 벗어나면 작은 가게가 있다지만, 나는 ‘원시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현재 러시아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과의 충돌로 인해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유튜브, 비자카드, 심지어 ChatGPT까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현지 시각 오후 7시 35분. 입국 절차를 마치고 공항 안으로 들어왔다. 귀국 때 탑승 수속을 하게 될 2층으로 올라가니 거대한 조형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쁘게 움직이려던 마음을 하나씩 내려놓고, 두 시간가량 머문 뒤 숙소로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2023년, 여섯 번째 유라시아 대륙횡단 당시 만들어 두었던 러시아 현금카드가 있다. 물론 지하철, 버스, 택시 등 대중교통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공항 와이파이는 잡히지만 러시아 전화번호가 필요하다. 안내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하니 무표정하게 ‘로밍’하라고 답한다. 로밍을 켰다.


택시를 잡기 위해 공항 밖으로 나왔다. 도로에는 눈이 흩어져 있고 질퍽거리며 미끄럽다. 대부분 얀덱스 택시 앱을 사용한다. 이런 환경에서 이방인이 길에서 택시를 잡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사람과 짐으로 혼잡한 공항 앞에서 시내로 연결되는 공항버스를 탔다.


수십 겹의 옷을 껴입은 듯한 몸집의 버스 매표원은 내 질문을 귀찮아하지 않았다. 다른 러시아인들이 그를 거의 찾지 않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러시아 사람들은 독서량이 많고, 개개인의 디지털 학습 능력도 높다.


숙소는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 미디어 그룹 주변으로 잡았다.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에서 시내 방향으로 약 21km, 콤프까지는 동남쪽으로 약 9.1km 거리다. 공항, 숙소, 콤프 모두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어지는 모스크바 북쪽 축에 위치해 있다. M10 ‘러시아’ 도로와 M11 ‘네바’ 연방도로가 두 도시를 연결한다.


결국 현금카드 외에는 오직 사람들과의 직접적인 만남으로 숙소까지 이동했다.


공항에서 지하철역까지는 버스를 탔고, 지하철로 네 구간을 이동한 뒤 숙소까지 15분을 걸었다. 그 과정에서 네 사람에게 도움을 받았다.


버스 매표원의 도움, 버스 안 옆자리에 앉은 여성의 노선 안내, 어느 역에서 내려야 하는지에 대한 조언. 지하철역 밖으로 나오자 제대로 눈이 쌓인 길이 펼쳐졌다.


이미 모스크바는 한밤중이었다.

두 개의 배낭을 메고 목발을 짚은 채 질퍽거리는 눈길을 걷는 일은 쉽지 않았다. 지난해 초, 순간적인 접질림으로 발목 인대가 파열되었다. 수술 대신 자연 치유를 선택했고, 1년을 계획으로 몸을 움직여 왔다.


역 입구에 서 있던 젊은이에게 다시 도움을 받았다. 무뚝뚝해 보였지만 역시 친절했다. 숙소 방향을 정확히 확인했다.


숙소 간판이 보이는 지점까지는 공원에서 개와 산책 중이던 아주머니와 함께 걸었다.


2026년 초, 국민과의 대화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디지털 주권’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서방과의 충돌로 겪는 결정적 고립 속에서도 러시아를 구성하는 다양한 시스템과 콘텐츠가 독립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대한민국 국민 한 사람으로서, 나의 시선은 러시아라는 국가가 아니라 러시아 사람 한 명 한 명에게로 향한다.


2023년 여섯 번째 유라시아 대륙횡단 중 들렀던 바이칼스크. 바이칼호수 변의 작은 도시. 낚시·야외용품점을 운영하던 한 러시아인의 말과 담담한 표정이 아직도 선명하다.


“물론 전쟁으로 기름값과 물가는 올랐고 생활은 힘들다. 하지만 러시아는 수많은 일을 겪어왔고, 이번에도 과거처럼 감당해 낼 것이다.”


2026년 1월, 모스크바 공항에서 숙소까지 오는 동안 만난 사람들 한 명 한 명의 말과 행동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의 모습, 그리고 대한민국의 모습을 떠올린다.


지금은 VPN을 설치해 유료로 사용하며 러시아에서도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챗GPT에 접속하고 있다. 내 몸은 모스크바에 있지만, 가상 공간에서는 호주로, 노르웨이로 수시로 이동하며 나만의 ‘디지털 주권’을 유지하고 있다.


1월 13일. 오늘도 눈길을 걸어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모스크바는 방사형 도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중심에는 크레믈과 붉은 광장이 있다. 그로부터 약 2.8km를 따라 원형 대로가 형성돼 있는데, 이를 가든 링(사도보예 깔쪼)이라 부른다.


러시아를 움직이는 이 크레믈 네트워크 안에는 러시아 지리학회 건물도 포함돼 있다. 소련 시절 KGB, 현재의 연방보안국보다도, 러시아 문화의 상징인 볼쇼이 극장보다도 더 중심부에 위치해 있다. 뉴욕의 The Explorers Club 역시 도시의 핵심 네트워크 안에 있다. 나는 이곳에서 러시아 탐험가들을 만난다.


나는 누구인가.


존재하지 않는 직업을 붙들고 살아온 나,

세상의 시선에서 비켜난 일을 해온 나,

꿈과 현실 사이에서 오래 방황해 온 나,

무모한 탐험가라 불리기도 했던 나.

마른 막대기 같은 겉모습의 삶이었다.


현실과 한계 앞에 안주하고 싶어 하는 나,

자기 욕망으로 진리를 이용하고,

자기와 자기 사람만을 위해 타인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는 나.


이런 나를 넘어설 수 있는 힘은 무엇인가.

경계 밖의 낯설음과 불편을 감당하게 하는 용기는 무엇인가.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대의와 가치다.


염려하고, 불평하고, 욕망하고, 이기적인 ‘나’를 넘어서는 대의와 가치에 대한 확신이다.


그 확신이 헌신을 낳고, 희생을 부르고, 때로는 죽음까지 감당하게 한다.

나는 그것을 ‘용기’라고 부른다.


그리고 나에게 그 용기의 근원은 하나님, 곧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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