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보로시스크(Новороссийск)로부터 온 소포
Новороссийск는 흑해 북쪽 해안, 캅카스반도의 체메스만(灣)이 오목하게 들어간 곳에 있는 항만도시이다. 이틀 전, 발신지가 ‘노보로시스크’로 표시되어 있는 소포가 사무실에 도착했다.
육로 길로 1만 2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한국에 한 달 만에 도착했다. 1월 24일부터 우편물은 수신자를 찾아다녔지만 상세 주소가 기입되지 않아 결국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인천 물류센터로 되돌아가 있었다. 어느 날부터 나는 소포를 보낸 친구, 이고르와 우편물의 위치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대륙횡단 중에 현장에서 만나 관계를 맺은 친구와 sns 상에서 관계를 유지하는데 1만 2천 km라는 거리는 아무런 제한이 되지 않는다.
이고르는 소포에 기입되어 있는 바코드를 통해 우편물의 위치를 추적했고 관련된 정보를 내게 보내주었다. 나는 그가 보내준 정보와 바코드를 통해 국내에 있는 소포의 위치를 체크했다. 그리고 2월 5일 이고르가 보낸 선물을 받을 수 있었다. 노보로시스크는 25만 명 정도 되는 도시이다. 러시아 곡창지대에 해당하는 크라스노다르 지방에 속해 있지만 시멘트 공장들이 많은 도시로 더 알려져 있다.
우편물을 받았다는 나의 메시지에 대해 이고르는 이렇게 반가움을 표현했다. 이번 일은 서로가 우정의 관계를 맺고서 함께 이루어 낸 최초의 모험이었다고.., 그렇다.
코로나 정국에서 국경너머로의 이동행위가 줄어들었지만 비대면의 상황에서도 sns를 통해 우리는 서로를 이해해 가고 있다.
2019년 10월 어느 날,
나는 네 번째 유라시아 대륙 횡단을 마치고 육로길을 통해 다시 블라디보스토크에 돌아와 있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함께 도착한 모터바이크를 역 화물창고에서 찾고서 며칠에 걸쳐서 한국행 배에 싣는 작업을 마친 날이었다.
홀로 도심의 밤 길을 걷다가 귀 안으로 들어오는 소리에 이끌리어 움직이다 보니 중앙광장에 도착해 있었다.
음악 페스티벌이 광장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이곳에서 이고르와 만났다. 그는 록커이자 기타리스트로서 이 축제에 참가했다.
러시아에서 모터바이커 클럽의 탄생은 록음악과 깊은 관계가 있다. 록음악의 바탕에는 저항정신이 깔려있다.
러시아 바이커들의 탄생을 글로 그려본다.
1991년 12월 25일, 냉전시대의 적이었던 소련이 해체될 줄은 미국이나 서구 사회의 어떤 일원도 예측하지 못하고 있을 때이다.
1989년, 모스크바 시 외곽 한적한 장소에 일단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남. 녀 청년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어디에서 구했는지 어떤 이들은 청바지까지 입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몰려있는 곳으로부터 음악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음악 장르는 누군가 문제 삼으면 큰일이 날 “록”이었다. 하지만 밤이 깊고 한적한 장소이기 때문에 이들 록커들의 동선을 따라다니지 않고서는 문제 삼을 만한 누군가에게 발각될 염려는 없었다.
그레벤시코프(보리스 그레벤시코프-Борис Гребенщиков-는 러시아 최초의 록가수이다. 레닌그라드- 현, 상트 페테르부르크- 출신인 그는 12살에 비틀스의 “Help”를 접했다. 이후 친구들과 남몰래 미국의 라디오리버티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녹음하고 연주하곤 했던 그는 1972년, 아쿠아리움-Аквариум-이라는 록그룹을 만들었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분위기가 한참 무르익었을 때, 관중들 뒤편으로부터 음악과는 다른 소란한 소리들이 들려왔다.
소비에트의 사회주의의 수호자로서 정부로부터 인정받고 있는 청년 정치조직, ‘콤소몰’ (Комсомол) 단원들이 관중들 사이를 뚫고 무대 앞까지 진입을 했다. 그들의 목표는 가수였다. 이들에게 붙잡히면 마구잡이로 구타가 시작된다.
이때 무대와 관중 사이의 틈 속으로 뛰어드는 또 다른 무리들이 있었다. 이들은 모터바이크, 우랄‘Урал’을 타고 무대 앞까지 진입했다.
러시아 최초의 모터바이크 클럽, ‘심야의 늑대들’(Ночные волки. 1989~)의 멤버들이다.
바이커들과 콤소몰 청년들 사이에서 패싸움이 시작되었다.
더 치밀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바이커들은 록가수를 한쪽으로 빼돌렸고 대기하고 있던 모터바이크는 가수를 싣고 어둠 속 저편으로 사라졌다..,
그렇다, 러시아에서 모터바이커들의 탄생은 록가수들을 보호하기 위해 탄생했다.
바이크 클럽이 가지고 있는 정신이 ‘록’ 정신과 많은 부분을 공유한다. 가장 두드러지는 공통점은 기존의 질서를 부인하는 저항성이다. 록 뮤지션으로서 이고르의 이력도 상당하다.
1996년, 나는 모터바이크를 타고 홀로 시베리아를 횡단했다. 1991년에 이루어진 소련의 해체와 남북 분단의 상황에서 20대 청년이 모터바이크를 타고 러시아를 횡단한 이야기에 러시아의 바이커들처럼 록커인 이고르도 관심이 많다. 나의 이야기가 러시아 뮤지션에 의해 노래가 되어 불릴 것이다
기존의 질서에 대한 저항성을 공통점으로 하고 있지만 현재 러시아의 바이커들은 강한 러시아를 지향하는 민족주의자들이 많다. 이들은 푸틴 정부를 지지한다.
MC계열의 상징인 러시아 최초의 모터바이크 클럽, ‘심야의 늑대’의 리더와 멤버들은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푸틴’ 대통령과 함께 모터바이크를 타며 달리는 위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기존의 질서에 대한 바이커들의 저항정신은 자국의 기득권이 아닌 서방세계가 그 대상이 되어 있다.
하지만 러시아의 바이커들은 여전히 록 음악을 좋아한다. 1996년의 나의 이야기 속에서 이고르가 찾아낼 저항성이 긍금해진다.
긴 겨울 동안 무거워진 몸으로 우울해진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는 러시아 인들에게 강렬한 햇볕이 내리쬐는 여름은 그야말로 열정의 시간이다. 짧은 여름동안 재빨리 꽃을 피우고 씨를 퍼트리는 존재들처럼 러시아인들은 이 여름을 자연에서 햇볕과 함께하는 시간을 만끽해 왔다.
그러던 어느 날, 러시아를 횡단하는 도로가 만들어지고 길 위에 모터바이커들이 등장했다. 11개의 시차와 180개 이상의 민족을 가진 러시아의 끝이 없는 길을 달려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
러시아의 바이커들은 MC계열의 클럽과 MCC계열로 나뉜다. MC는 조직의 강령이 분명하며 상하의 관계 또한 체계적이다. 강한 러시아를 추종하는 이들은 마치 사회주의 시절의 청년 정치 조직이었던 ‘콤소몰’과 비슷한 느낌이다. MCC계열은 보다 개인적이고 자유롭다. 공통점은 바이크를 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비교적 관대하다는 것이다.
러시아에서 모든 바이커는 민족과 인종, 종교에 관계없이 형제이다라는 구호를 가지고 있다. 여전히 이 말은 유효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회가 복잡해지듯 러시아의 바이커들도 바이크를 탄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형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2021. 02. 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