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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ㅎㅇ Apr 09. 2024

불필요한 욕망에서 벗어나기, 24시간 단식

내가 다니는 회사는 매 월 셋째 주 금요일에 전사 휴무를 한다. 이 금요일은 오롯이 나 혼자 있는 날이다. 평소라면, 나는 내가 익숙한 장소를 간다. 광화문 일대나 연희동에 있는 자주 가는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고, 카페에 가 글을 쓰거나, 글을 읽는다. 그런데 이번 금요일은 동네에 있고 싶었다.


그렇다고 마냥 누워서 있는 건 하지 못하는 사람인지라, 동네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궁리해 보기로했다. 그래서 한 두 가지, 24시간 단식과 목욕탕가기.


정신과약을 장기 복용하면서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않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 것이 단식과 목욕탕을 시도한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신경안정제는 내 신경을 완화할 뿐만아니라, 내 몸의 대사도 느리게 한다. 자연스레 소화력이 떨어진다. 나 같은 경우엔 만성 변비에 시달리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몸이 부은 채로 일어나는 일이 잦았다.


일어나자마자 커피 한 잔을 마셨다. 당이 없는 커피나 물, 차는 단식에서 허용되기 때문이다.

커피를 마시고, 목욕탕에 갔다. 어림잡아 25년만에 가본 목욕탕이었다. 내가 간 동네 목욕탕은 연 이레, 한 번도 리모델링을 하지 않고, 시간을 켜켜이 쌓은 모습으로 날 맞이해 주었다.


한시간 반 동안 목욕탕에 있었다. 새신도 받았다. 냉탕과 온탕을 오고가며 몸의 이완과 수축을 반복했더니, 기분이 좋아지고 몸이 가벼워졌다. 혈액순환이 잘 되니, 배가 고팠다. 단식을 중단할까 잠깐 고민했다. 허기를 누를 자극이 필요해 목욕을 하고 집에 들어와 진하게 커피 한잔을 내려 마셨다. 그 이후로 오후 내내 앉아서 글을 썼다가, 누워있다를 반복했다.


단식한 지 24시간이 지났다. 놀랍게도 배고픔의 욕구가 사그라들었다. 매일 오후 4시면 젤리와 도넛 같은 당이 높은 음식이 먹고싶었던 내가 글쓰기, 웨이트, 목욕 등 다양한 활동을 하는 동안 한 번도 당이 먹고 싶지 않았다니.


서울 도시 일대를 돌아다닐 때와 단식하는 날의 나의 생활을 비교해 보았다. 밖을 돌아다니는 과정에서 외부의 욕망에 잠식 당하는 상황과 외출하지 않으며 이것들과 거리를 두는 것은 큰 차이가 있었다. 유행하는 패션과 음식이 넘쳐나는 도시는 나에게 존재하지 않았던 욕망을 깨우는 곳이었다. 당스파이크가 올 만큼 자극적인 음식을 먹고 할부로 옷을 사다 보면, 그 이후에 남는 건 즐거움보다는 갑작스러운 무력감과 표현하기 어려운 씁쓸함이었다.


나를 무력하고 씁쓸하게 하는 것들을 욕망하는 상황을 없애기 위해 가끔은 24시간 단식을 해보자고 다짐했다. 쉬는 날 이유 없이 쇼핑몰을 가는 행동을 줄여보고, 집 혹은 동네에서 내 기분이 좋아지고 가벼워지는 경험을 늘려 나가는 것이다. 나에게 필요한 건 발견보다 놓아버리는 것일수도 있겠다고 단식 다음 날, 산뜻한 몸 상태로 일어난 아침에 나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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