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학전집노트 노템버 브랜딩 기록
나의 클라이언트 대부분은 대기업이다. 나는 주로 큰 규모의 프로젝트를 통해 브랜드의 인식을 진단하고, 메시지를 정리하고, 캠페인을 실행해 오는 일을 한다.
그런데 내가 브랜딩을 가장 확실히 ‘검증’한 순간은 의외로 아주 작은 규모의 현장이었다. 지인이 만든 노트를 홍보하는 방안을 의뢰받았을 때였다.
노트를 만드는 사람은 두 명이었다. 한 명은 영업을, 다른 한 명은 디자인을 맡고 있었다. 둘은 일로도 가까웠지만, 일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사이이기도 했다. 친구였다.
영업을 맡은 친구는 엄청난 독서가였다. 그가 감명 깊게 읽은 책을 디자인하는 친구에게 추천하면, 디자인하는 친구는 그 책을 읽고 영감을 받아 노트로 만들었다. ‘독서의 감정’이 ‘손으로 남는 물건’이 되는 방식이 좋았다.
브랜드 이름은 노템버였다. 노벰버(11월)와 셉템버(9월)를 합쳐 만든 말. 독서를 하며 11월에서 9월로 돌아가는 느낌, 혹은 그 사이에서 헤매는 경험을 나누기 위해 시작한 프로젝트였다.
우리는 타깃을 2030 여성으로 두고, 그들이 가장 많이 접하는 채널인 인스타그램에 홍보를 집중하기로 했다. 그리고 한 줄 약속을 세웠다.
“A Small Good Thing — 작지만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경험.”
우리가 한 일은 콘텐츠를 ‘많이’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콘텐츠의 리듬을 만드는 것이었다.
노템버는 매번 다르게 말하지 않았다. 항상 “A Small Good Thing”이라는 약속 아래, 사람들에게 ‘작지만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경험’을 일관되게 말했다. 이야기를 길게 설명하기보다, 먼저 이 계정의 리듬이 보이게 했다.
큰 글자, 정해진 로고 위치, 색면 같은 요소를 반복해서 썼다. 사람들은 내용을 다 읽기 전에 먼저 익숙해진다. 그 익숙함이 신뢰가 되고, 신뢰가 참여로 이어진다.
우리는 “노트와 문학의 교집합은 무엇일까?”를 오래 고민했다. 결론은 필사였다. 그래서 필사를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노트를 주고, 그들이 필사한 모습을 기록해 올리는 ‘노템버 필사클럽’ 이벤트를 기획했다.
이벤트를 통해 계정에는 ‘참여하는 사람들’이 생겼고, 콘텐츠는 조금씩 ‘게시물’이 아니라 ‘프로그램’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리듬이 생기면 콘텐츠는 ‘게시물’이 아니라 ‘라인업’처럼 보인다. 그리드에서 필사클럽, 북서비스 같은 라벨이 반복될 때 사람들은 이 계정을 취향의 기록이 아니라 운영되는 서비스로 받아들인다. “여기서 뭘 얻는지”가 한 번에 보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콘텐츠의 리듬을 만들고 참여 구조를 설계하며, 1년 동안 1,500명의 팔로워를 모았다.
반대로 리듬이 없으면 콘텐츠는 매번 새로 설명해야 한다. 말이 달라지고, 시작할 때마다 에너지가 든다. 사람도 운영자도 결국 ‘일관성’을 소비하기 시작한다.
대기업 브랜드 일을 하며 배운 것과, 작은 브랜드 현장에서 확인한 것이 결국 같은 지점에서 만났다. 브랜드는 멋진 말보다, 반복해서 마주치는 경험 속에서 더 오래 남는다는 것. 그걸 나는 노템버에서 가장 선명하게 배웠다.
인스타그램 출처: notember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