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여름 남도 종단 여행기 4
체크 아웃 후 바로 남해로 이동한다. 남해섬은 현재 우리 숙소에서 지도상 직선거리로 10km 이내로 바다 건너편에 있다. 저너머에 남해가 보인다. 만약 차로 바다 위를 달리면 10분도 채 안 걸릴 거리다. 그런데, 육로로 가면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해안선을 따라 구불구불 약 80여 km 길을 가야 한다. 갑자기 손해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효율만을 생각하는 나쁜 버릇이 여행 중에도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슬로 슬로. 괜찮아. 이것도 여행의 일부야. 여정이 여행이야.
점심은 남해에 햄버거 맛집이 있다 하여, 한식에 지친 우리는 그곳으로 달려가 점심을 먹으려 한다. B는 기가 막히게 이런 곳들을 찾아낸다. 있을 때 빨리 인수인계받아야지. 언제 또 병원에 끌려들어 가면(?) 정보는 끝이다.
한 시간 반가량 이동해야 하므로, 요기는 하고 가야 한다. 호텔 옆 바다김밥이라는 여수에서 뜬 꼬마 김밥집이 있다. 제주의 만복김밥 비즈니스 모델을 그대로 차용했다. 매장 안에서 먹을 수 없고 사서 들고 나와 밖에서 먹어야 한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다들 차 안이나 가게 앞 벤치에 앉아 군소리 없이 먹는다. 이런 불친절 마케팅도 입소문이 되고 콘셉트가 된다. 제주가 전복이면 여수는 갓김치다. 제일 특이한 메뉴는 갓참치김밥이다. 장범준과 갓김치 없었으면 여수는 큰일 났을 거다. 차에서 몇 개 주섬주섬 먹고 남해로 이동한다.
여수에서 남해로 이동하는 해안선은 공업단지다. 화학공단, 포스코 등이 있다. 이동 중에 곁으로 지나가는 거대한 트럭들 마다 위험물이라는 겁나는 표식을 붙히고 있다. 공단의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아마도 호암지역의 유일무이한 대규모 공업지역이 이곳일 것이다. 차 안으로 매쾌한 가스 냄새가 들어오는 듯하다. 예전 화학공장 출장 때 마셨던 그 냄새다.
공단 지역을 가로질러 남해섬으로 들어선다. 자그마한 남해대교 옆에 이순신대교라는 긴 다리가 생겼다. 예전에 경상남도 관광 홍보 포인트가 남해대교였는데 이제는 귀여운 교량이 되었다. 다리를 건너 남해로 진입하니 자연의 싱그러움만 눈에 보인다. 비가 와서 더 깨끗하고 싱그럽다. 지금 중부지방은 비로 난리라는데 남주지방은 촉촉한 정도라 여행하기에는 다행이다.
남해의 중심지 남해읍을 지나 산길로 시골길로 이동하며 모두는 "여기에 햄버거집이 있다고?"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종착지에 다가서니 해변가에 허름한 시멘트 건물이 있고 주차장 표식이 있다. 이름하여 더 풀. 폐 수영장에 햄버거 집을 만들었다. 들어서니 두 커플 손님이 있다. 분위기는 폐수영장과 어우러져 무척 감각적이다. 소품들, 쌓아놓은 코카 콜라 병 더미들이 말해주는 주인장 센스가 장난이 아니다.
햄버거와 감자튀김의 맛은 분위기에 편승하여 충분히 만족스럽다. 육즙이 가득하고 감자튀김은 굵고 바삭하다. 병째 주는 콜라는 햄버거의 풍미를 더한다.
인구 2만도 안 되는 남해군에 이런 힙한 햄버거 집이 있다니. 반전도 이런 반전이 없다. 남해에 들어오면 멸치정식만 먹을 줄 알았는데...
더 풀과 붙어 있는 건물의 한편에는 '남해스떼'라는 재치 있는 아재개그 스타일의 상호가 붙어있다. 인도 물품들이란다. 묘한 인도향과 함께 다양한 인도 패션과 소품들이 있다. 젊은이들을 사로 잡기에 힙한 포인트가 많이 있다. 역시 반전이다. 사람 하나 없는 이 바닷가에 이런 샵이 있다니... 놀랍다. 놀라워.
또 하나 B가 픽업해놓은 곳이 있다. 돌창고라는 곳인데 지나는 길에 눈에 스치기만 해도 그 모양새가 예사롭지 않다. 잠시 유럽에 온 줄 착각이 들 정도다. 이곳은 복합문화공간으로 1층 공방과 샵, 2층 카페, 3층 뷰 보는 곳으로 이루어졌다. 동네 창고로 쓰던 건물이 용도를 다해 놀고 있었고, 아트 프로젝트를 유치하며 새로운 공간으로 되살아 났다. 문화의 힘이 이런 거지.
건물도 건물이지만, 주차장 뒤꼍의 화단이 완전히 멋지다. 프로방스 들판을 보는 듯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있다. 이런 다듬어지지 않은 정원이 너무 좋다. 우리는 다듬은 정원은 취향 아니다.
1층은 도예가 분이 작업장으로 쓰고 동시에 전시와 샵으로 운영한다. 다락방 같은 2층은 카페로 운영한다. 입구에 웨이팅 안내가 있는 곳을 보니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사람들이 많이 오는 것 같다. 이 후미진 곳까지 핫플이 되다니... 놀랍다. 놀라워. 도시 촌놈 완전히 충격 먹었다. 1층 샵에서 전시하고 파는 도자기들이 너무 가볍고 색상도 좋다. 도예가 분과 한참 대화 후 몇 개 그릇도 구입한다. 집에 가서 요구르트 담아 먹어야지. 남해섬은 계속 반전에 반전이 계속된다.
남해섬에는 호텔이라 부를 만한 곳이 두 곳 있다. 하나는 아난티 남해고 나머지는 이곳이다. 가격이 차이가 많이 나므로 우리는 이곳. 굳이 숙소에 투자를 많이 하지는 않는다. 그래야 여행에 부담이 줄고, 횟수를 늘릴 수 있다. 숙소는 기본선까지만 갖추면 오케이다.
외관의 모양새는 허름한 듯하나 실내는 비교적 깨끗하고 좋다. 무엇보다 호텔 방보다 훨씬 넓어서 쾌적하다. 사실 라마다 호텔 방에서 3명이 복작거리기에는 좀 좁은 감이 있었다. 이 호텔이 위치한 스포츠파크는 겨울철 북쪽에 눈이 와서 운동을 할 수 없는 팀들이 동계전지훈련을 내려오는 곳이다. 그래서 호텔 베란다에서 보이는 공원에는 축구장, 야구장 등이 있다. 국가대표 팀들도 여기에서 전지훈련을 하곤 한다. 호텔 로비에는 다녀간 팀들 사인 포스터들이 붙어있다.
저녁은 칼국수와 해물전, 그리고 생선구이 등 다양한 메뉴를 제공하는 다랭이맛집으로 결정한다. 해안선을 따라 바다를 즐기며 약 25분 남하하면 그 유명한 다랭이마을이 나온다. 직접 와 보면 현장감 정도의 장점이 있지만, 뷰의 질은 방송 등에서 드론으로 찌고 난리를 쳐서 보여주는 것이 훨씬 멋지다. 생각보다 계단 논 하나하나의 넓이가 작다. 아휴. 저만한 땅도 아까워 저리 논을 만들었구나 싶다. 호남의 너른 땅과 경상도의 척박한 땅 모양새가 비교된다. 이런 차이들이 기질의 차이를 만드러 낸 거지. 그리고 그 차이를 이해할 시간도 없이 여러 정치적 상황과 의도에 휘둘려 버린 거지. 어쨌든 드디어 방송으로만 보던 다랭이마을을 와 본 거다.
능선 제1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내리막 산길을 따라 내려가면 식당이 나온다. 마을의 모양새가 가파른 절벽에 있다 보니 이태리 산토리니 섬을 생각나게 한다. 절벽에 있는 집들이니 뷰가 좋은 것은 기본 중에 기본이다. '바다멍' 하기 좋은 곳이다. 칼국수와 해물전, 생선구이를 저녁메뉴로 결정한다. 해물전은 여름에 파 대신 부추를 넣어 지져주는데 얇게 썰어 넣은 오징어와 부추가 바삭하게 어우러져 일품이다. 여기서는 해물전이 위너다. 생선구이는 바닷가니 두말할 필요도 없다. 식사를 하고 바로 밑 카페에서 비린 입을 씻을 커피를 먹고 싶었으나 곧 닫을 시간이라 포기하고 호텔 근처 9시까지 한다는 카페로 복귀하려 한다.
숙소 옆 카페로 이동하던 중 해수욕장으로 보이는 해변이 보여 잠시 들른다. 흐린 해변에는 아무도 없다. 두터운 구름 뒤에 해가 지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맑았다면 노을이 황홀했겠다. 프라이빗 비치 같이 호젓하다. 번쩍이는 노래방 간판도 포장마차 간판도 없는 것을 보니 아주 조용한 해변인 것 같다. 더워지면 해수욕하기 좋겠다. 호감 가는 해변이다. 다시 와봐야겠다.
호텔 옆 카페에 도착한다. 우와 손님들이 많다. 지금까지 이동하면서 사람을 하나도 못 봤는데 여기는 붐빈다 싶을 정도로 사람이 있다. 이것도 반전이네. 이 조용한 해변에 로스팅 카페를 표방하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는 어디를 가나 신선하게 볶은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다.
커피 맛이 괜찮아서 사람들이 찾아오나 보다. 바람이 부는 날씨라 많이 덥지 않으니 외부에도 사람들이 앉아 담소를 나눈다. 여행객들인가 싶다. 이렇게 손님들이 오시니 9시까지 하시나 보다. 여기 남해에 식당이나 카페들은 7시 이전에 모두 닫는 것이 일반적이라 9시까지 한다니 여유가 생긴다. 커피 타임 후 숙소로 복귀하고 휴식한다. 내일은 온전히 남해 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