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냄새를 맡아보아요
마스크가 일상이 된 지도 벌써 1년이 넘은 것 같다.
이상하게도 18, 19년과 달리 20년은 뭔가 기억이 잘 안 난다. 앨범에 차곡차곡 쌓인 사진을 보면 평범하게 잘 지낸 것 같으면서도 기억이 뿌옇다. 왜일까? 물리적으로 떨어진 것 이상의 결핍이 있는 거 아닐까?
기억 속에 냄새가 없다는 점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새로운 음식 보았을 때 이전의 경험을 통해 그것의 맛을 예상할 수 있듯이, 오감(Five Senses) 모두 과거 · 현재 · 미래와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중 후각은 유난히 과거의 기억을 불러오는 특별한 힘이 있는 것 같다. 특정 장소, 시간, 사건에 강력하게 각인된 냄새들이 있다. 예를 들면
광화문 D타워에서 처음 맛본 아일레이 싱글몰트의 피트 향
해군 훈련소에서 쓴 노란색 보급 비누 냄새
미국에서 총기 수리를 하고 손에 밴 화약 냄새
초등학생 때 바이올린 레슨을 받으며 맡은 끈적한 레진 냄새
비 오는 날 산책할 때 나는 초록초록한 나무 향 등이 있겠다.
마스크를 쓰면 마스크 특유의 냄새가 있다. 인공적이고 깨끗하지만, 무언가 살기에는 척박한 그런 냄새. 1년을 넘게 일상 대부분 시간에 마스크를 쓰고 지냈기에 냄새,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그런 것들을 놓치며 사는 게 아닌가 싶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일부러라도 가끔은 눈을 감고 조용히 마스크를 내려본다. 세상은 생각보다 섬세하고, 복잡한 냄새들로 구성되어 있다.
'의자의 재발견'이라는 책에서 끝에 김상규 저자는 말한다.
예컨대 의자를 '앉기 위한 사물'로 보는 것에서 벗어나 의자의 감정을 헤아릴 여유를 갖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는 의자 디자이너의 입장에서 의자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맺음말이긴 하지만 의자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분명 아니다. 인공물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사물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 이리라.
사물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 이리라. 비단 사물뿐만은 아닐 것이다. 모든 건 사물, 사건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이다. 세상은 조금이라도 더 궁금해하고 탐구하려고 하는 사람에게 신비로움과 함께 다양한 경험을 준다. 축복은 입을 벌리는 만큼 들어오는 법이니깐.
20, 21년 기억의 책꽂이만 텅 비어있으면 슬프지 않을까?
다채롭게 세상을 감상해보자.